무죄는 올바름의 결과인가? 정의의 결과인가?
자작글........
[ 무죄는 올바름의 결과인가? 정의의 결과인가? ]
[ 최종 : 상식의 장례식 ] - 부제 : 올바름을 삼킨 정의의 기록
대한방송 강 기자가 한 걸음 나섰다.
주차장의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엄격한 음성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판사님, 법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이 판결로 인해 그 합의가 깨졌습니다.
정황이 명백한 살인마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이 스스로를 상아탑 안에 유폐시킨 오만 아닙니까?
국민은 지금 판사님의 법전이 아닌, 피의자의 피 묻은 옷을 보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일갈이었다.
판사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피곤한 듯 안경을 벗어 미간을 짚더니, 강 기자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 눈은 무심하면서도 깊은 심연 같았다.
"강 기자님, 어젯밤 치맥을 드셨더군요."
강 기자의 미간이 경련하듯 움츠러들었다.
수준 낮은 농담으로 치부하려 했으나, 판사의 눈빛이 너무나 진지했다.
그게 지금 이 참혹한 사법적 실패와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아주 큽니다. 기자님은 어젯밤 타 생명을 도구화하는 데 동의했고,
그 사체를 즐겼으며, 남은 잔해를 쓰레기통에 은닉했습니다. 이 모든 '정황'은 명백한 사실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범죄라 부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닭이니까요! 인간의 생명권과 비교하는 건 논리적 비약입니다.
아니요, 기자님. 비약이 아니라 '경계'입니다.
기자님은 정의라 적으시고 올바름이라고 읽는 우를 범하시는군요.
판사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압도적인 부동의 압박감이었다.
기자님은 지금 '닭은 생명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하는 취향'을 정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중이 저 피의자를 진범이라 믿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그게 더 기분 좋고, 편리하고, 정의로워 보이니까요.
하지만 법은 당신들의 그 '상쾌한 정의감'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올바름은 각자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지만,
정의는 차가운 법전의 문구 뒤에 숨어 있는 법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올바른 처단'을 위해 법이 증거도 없이 '정의'를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님은 오늘 그 폭력의 앞잡이가 되어 마이크를 휘두르고 계신 겁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주차장의 콘크리트 벽을 뚫을 듯 낮고 예리하게 깔렸다.
법은 당신들이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구역질 나는 진실' 앞에서도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만든 최후의 보루입니다.
정황은 넘치지만 증거가 없다면, 살인마를 풀어주는 오욕을 뒤집어쓰더라도 멈춰 서야 하는 게 법의 준엄함입니다.
그 멈춤이 없다면, 법은 내일 당장 당신의 집 쓰레기통에 닭 뼈가 있다는 이유로 당신을 단두대에 세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강 기자의 마이크 솜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밀어내며 덧붙였다.
기자님의 '상식'이 곧 유죄라면, 법은 사치일 뿐입니다.
그냥 광장에서 돌을 던지시죠. 그게 더 기자님답습니다.
판사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낡은 세단에 올랐다. 시동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강 기자는 마이크를 쥔 채 얼어붙었다.
그녀가 평생 쌓아 올린 지적 우월감과 정의라는 단어의 무게가,
판사가 던진 '닭 뼈' 하나에 짓눌려 산산조각 났다.
자신이 휘둘러온 정의가 사실은 대중의 식욕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잔인한 '기호'에 불과했다는 공포.
그 이성적 몰락 끝에 강 기자는 무너졌다.
강 기자가 느낀 것은 수치심이나 분노보다는 '실존적인 현기증' 이었을 것이다
그가 믿어온 세상이 한순간에 가짜처럼 느껴지는 그 감각인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정의라고 쓰고 정의라고 읽어라 하셨다.
그런데 받아쓰기할때 나는 올바름이라고 썻더니 틀린답이라고 했다. 왜그럴까?
그녀가 평생 쌓아 올린 지적 우월감과 정의라는 단어의 무게가,
판사가 던진 ‘닭 뼈’ 하나에 짓눌려 산산조각 났었다.
자신이 휘둘러온 정의가 사실은 대중의 식욕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잔인한 ‘기호’에 불과했다는 공포.
그 이성적 몰락의 끝에서, 강 기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판사의 독설보다 더 잔인한 아들 철수의 일기장이었다.
그제 저녁,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아들의 물음.
[ 선생님은 정의라고 쓰고 정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올바름이라고 썻더니 틀렸다고 했다. 왜그럴까? ]
그때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철수야, 정의라는 건 정해진 답을 맞히는 거야.
선생님 말이 맞아. 올바름 같은 네 생각은 답이 될 수 없단다.
아...그렇구나.
강 기자의 입술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정답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정답을 위해 아이의 눈을 멀게 했고, 자신의 아이를 시스템의 노예로 길들였기 때문일게다.
방금 판사가 뱉은 말들이 칼날이 되어 그녀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들에게 휘둘렀던 그 ‘정답’이라는 빨간 색연필이,
사실은 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난도질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은 정의로운 기자가 아니었다.
그저 아들에게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을 세습시킨 가해자였으며,
암묵이라는, 가족이라는 지독히도 자연스런 대물림일텐데도
타인의 피 묻은 옷을 구경하기 위해 아이의 깨끗한 도화지를 찢어버린 비겁한 엄마였다.
강 기자가 느낀 것은 수치심이나 분노를 넘어 ‘실질적인 파산’ 이었다.
그녀가 믿어온 세상이 가짜였다는 감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자신이 그 가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아들의 ‘올바름’을 지워야만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내가... 내가 내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지성의 붕괴는 모성의 절망으로 이어졌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주차장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철수가 일기장에 남긴 ‘왜그럴까?’라는 작은 질문이,
그녀가 평생 써 내려간 수만 장의 기사보다 더 무겁게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강 기자는 더 이상 마이크를 쥐고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에게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아들을 찌른 흉기처럼 느껴졌으니까.
차가운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오열은,
아무런 논리도, 아무런 정의도 담지 못한 채 비참하게 흩어졌다.
방송사 주차장의 콘크리트 바닥은 차가웠다.
방금 전 스튜디오에서 판사의 궤변을 난도질하던 기자의 서슬 퍼런 논리는,
차가운 매연 냄새 섞인 공기 속에서 맥없이 흩어졌다.
그녀는 주저앉았다. 아니, 무너졌다는 표현이 옳았을게다.
카메라 렌즈가 비추지 않는 이곳에서 그녀는 영웅이 아니라,
단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꺾여버린 육신일 뿐이다.
사람들은 내일 아침, 편집된 화면 속의 당당한 그녀를 보며 '정의'를 말하겠지만,
정작 그 정의의 주인은 어두운 주차장 구석에서 짐승 같은 신음을 삼키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손등의 핏줄이 가늘게 떨렸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 TV 속의 '나'는 여전히 우아하게 승리하고 있었다.
남편의 찬사는 찬란해서 잔인했다. 그 찬사들은 그녀의 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발등에 떨어져 무겁게 쌓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아이의 방으로 도망쳤다.
그곳만이 유일하게 '정의'라는 단어가 닿지 않는 성역이라 믿으며....
방 안은 고요했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시계 초침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 그녀는 홀린 듯 그것을 펼쳤다.
'나는 올바름이라고 썼는데 틀렸다.'
개구리가 천천히 데워지는 가마솥안에서 즐기는 모양새처럼 자신의 온 몸이 시나브로 익어감을 느낀다.
그 문장을 마주한 순간, 그녀의 무릎은 주차장에서보다 더 처참하게 꺾였다.
바닥에 닿는 무릎뼈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항복 선언이다.
밖에서 부르짖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거창한 간판이 아이의 서툰 필적 하나에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눈물은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와 일기장 위로 떨어졌다.
'올바름'이라는 글자가 아내의 눈물에 젖어 검게 번져갔다.
마치 기자가 평생 써온 진실들이 사실은 검은 얼룩에 불과했다는 듯이.
남편은 문가에 서서 그 모든 무너짐을 보았다.
어제 장모와 함께 아이의 일기장을 보고 이미 알고있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아내는 TV 속의 투사는 그곳에 없었다. 단지 제 자식의 오답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부정당한 한 여자의 가냘픈 등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저 어둠 속에서 아내와 함께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떨면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대는
그 고통스러운 정적을 함께 들이마셨다.
( 모성초 - 하이랑 대사 삽입곡으로 s 03:23)
내외가 모두 아이방으로 간뒤 시간이 지나다보니 염려스러운 친정엄마.
조심스레 아이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그리고 방안을 열린 문틈으로 바라다보다가 심장이 멎는 듯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딸의 얼굴. 엄마의 눈은 금새 그 아픔이 전이된 듯 촉촉하게 젖어온다.
스치는 음영에 눈을 살며시 들어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시선이 엉켰다. 엄마였다.
엄마의 눈가에 맺힌 물기는 조명 아래 비릿하게 빛났으나,
끝내 뺨을 타고 흐르지는 않았다.
그것은 노모가 평생토록 세상의 오물로부터 자식을 지켜내며 벼려온 '마른 눈물'이었다.
내가 아이의 일기장에서 본 그 '틀린 올바름'을, 나의 엄마는 이미 평생 나를 보며 느끼고 있었구나.
엄마의 눈은 딸에게 말합니다.
'세상이 너를 오답이라 해도, 나는 네가 쓴 모든 문장을 정답으로 품고 살았다' 고.
아내는 엄마의 눈 속에서 자신의 일기장을 보았다.
정의를 쫓느라 놓쳐버린 수많은 오답들, 그리고 그 오답을 묵묵히 지워주던 엄마의 거친 손마디를.
아내는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읊조렸다. '엄마, 나 틀렸어. 미안해요'
( 모성초 독백 대사부분 p )
엄마는 대답 대신 마른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틀려도 괜찮다는 허락이 아니라, 지금처럼 틀린 채로도 살아도 된다는 비정한 격려였다.
그때 눈물을 흘리는 딸아이의 눈을 더는 마주하지 못하고 사위가 볼까 내심 얼른
자기의 방으로 몸을 옮긴다. 소리없는 퇴장이다.
아니 그저 자식의 아픔을 전부 가져 가고픈 엄마였다.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엄마마저 그 눈물을 받아내기엔, 지금 딸이 짊어진 '틀린 올바름' 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다.
(엄마의 나래이션..)
너도 이제야 부모가 되어 네 오답을 마주하는구나. 하지만 걱정 마라,
네가 쓴 그 아픈 문장들까지도 내게는 이미 다 정답이었단다.
(모성초 엔딩과 함께 암전 e )
Comments
koko
02.27 20:46
거참말많네
02.27 20:56
모자
james2
daiki
주성치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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