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선택했지만 한국이 버린 선수
진짜 화나네요.
총을 든 개척자, 태극기를 끝까지 선택한 이름 —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에게 보내는 늦은 경의
세계 지도를 펼쳐 보면, 러시아 북서부의 고풍스러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라 불렸던 이 도시는 혁명과 전쟁, 예술과 철학이 공존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한 명의 젊은 선수가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웠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체육보건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었다. 러시아 청소년 대표까지 지낼 만큼 재능은 분명했다. 그러나 바이애슬론 강국 러시아에서 올림픽 출전은 실력만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세계선수권 결승’만큼이나 어려운 경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했다. 익숙한 조국 대신 낯선 나라를.
2016년 겨울, 그녀는 대한민국 국적을 택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국적 변경이 아니었다. 인생 전체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우연도 있다. 같은 도시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깊은 통찰을 남긴 철학자 박노자 역시 이곳에서 공부했다. 낯선 나라로 건너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삶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선수의 삶은 철학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한 번 쓰고 버리는 귀화선수”가 아니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귀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상당수는 대회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대표팀과 멀어졌다.
그러나 압바꾸모바는 달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세 번의 올림픽.
태극마크를 단 시간으로만 보면 거의 한 세대에 해당한다.
“평창을 위한 일회성 카드”가 아니라, 한국 바이애슬론의 시간을 함께 견딘 선수였다.
특히 평창에서 기록한 16위는 당시 한국 여자 바이애슬론 역사에 남을 성과였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종목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준점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는 바뀌었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
한국 바이애슬론 최초의 금메달.
그 총성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한국도 바이애슬론을 말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 그런데 우리는 그 영웅을 어떻게 대했는가
금메달 이후 돌아온 것은 환호만이 아니었다.
소속팀과의 갈등, 계약 해지, 그리고 무소속.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가 자비로 유럽에서 훈련해야 하는 현실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다.
국가대표는 메달을 따는 순간만 국가의 얼굴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준비 과정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공적 자산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귀화선수’를 동료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한국인으로 불렀던 것은 아닌가?
스포츠 선진국을 말하면서, 정작 선수의 최소한의 안정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구호는 공허하다.
압바꾸모바가 남긴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유산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도 바이애슬론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시간, 고통, 선택 위에 세워졌다.
■ 성적보다 빛난 것은 태도였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그녀의 순위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훈련 환경이 곧 기록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완주했다.
변명하지 않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프로답게 준비하고 싶었다.”
이 한 문장에는 선수의 존엄이 담겨 있다.
메달보다 품격이 먼저라는 사실을 보여준 말이다.
■ 총을 메고 한국 스포츠의 변방을 개척한 사람
압바꾸모바는 단순한 귀화선수가 아니다.
그녀는 한국 동계 스포츠의 지도를 넓힌 개척자다.
누군가는 인기 종목에서 박수를 받으며 스타가 된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설원에서 한 나라의 가능성을 만든다.
후자가 바로 스포츠를 진짜로 성장시키는 사람들이다.
■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한다
그녀가 한국을 선택했듯,
이제 한국도 선택해야 한다.
선수를 소모품처럼 쓰고 잊어버리는 체육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역사를 만든 동료로 기억할 것인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해야 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금메달 이상의 것을 남겼다고.
당신 덕분에 한국 바이애슬론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달고 달려준 그 용기에 경의를 보낸다고.
설원 위에서 울린 총성은 이미 기록이 되었지만,
그 총을 들었던 한 선수의 선택은 오래도록 한국 스포츠의 양심을 묻는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총을 든 개척자, 태극기를 끝까지 선택한 이름 —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에게 보내는 늦은 경의
세계 지도를 펼쳐 보면, 러시아 북서부의 고풍스러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라 불렸던 이 도시는 혁명과 전쟁, 예술과 철학이 공존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한 명의 젊은 선수가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웠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체육보건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었다. 러시아 청소년 대표까지 지낼 만큼 재능은 분명했다. 그러나 바이애슬론 강국 러시아에서 올림픽 출전은 실력만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세계선수권 결승’만큼이나 어려운 경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했다. 익숙한 조국 대신 낯선 나라를.
2016년 겨울, 그녀는 대한민국 국적을 택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국적 변경이 아니었다. 인생 전체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우연도 있다. 같은 도시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 깊은 통찰을 남긴 철학자 박노자 역시 이곳에서 공부했다. 낯선 나라로 건너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삶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선수의 삶은 철학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한 번 쓰고 버리는 귀화선수”가 아니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귀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상당수는 대회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대표팀과 멀어졌다.
그러나 압바꾸모바는 달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세 번의 올림픽.
태극마크를 단 시간으로만 보면 거의 한 세대에 해당한다.
“평창을 위한 일회성 카드”가 아니라, 한국 바이애슬론의 시간을 함께 견딘 선수였다.
특히 평창에서 기록한 16위는 당시 한국 여자 바이애슬론 역사에 남을 성과였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종목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준점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는 바뀌었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
한국 바이애슬론 최초의 금메달.
그 총성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한국도 바이애슬론을 말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 그런데 우리는 그 영웅을 어떻게 대했는가
금메달 이후 돌아온 것은 환호만이 아니었다.
소속팀과의 갈등, 계약 해지, 그리고 무소속.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가 자비로 유럽에서 훈련해야 하는 현실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다.
국가대표는 메달을 따는 순간만 국가의 얼굴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준비 과정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공적 자산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귀화선수’를 동료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한국인으로 불렀던 것은 아닌가?
스포츠 선진국을 말하면서, 정작 선수의 최소한의 안정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구호는 공허하다.
압바꾸모바가 남긴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유산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도 바이애슬론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시간, 고통, 선택 위에 세워졌다.
■ 성적보다 빛난 것은 태도였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그녀의 순위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훈련 환경이 곧 기록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완주했다.
변명하지 않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프로답게 준비하고 싶었다.”
이 한 문장에는 선수의 존엄이 담겨 있다.
메달보다 품격이 먼저라는 사실을 보여준 말이다.
■ 총을 메고 한국 스포츠의 변방을 개척한 사람
압바꾸모바는 단순한 귀화선수가 아니다.
그녀는 한국 동계 스포츠의 지도를 넓힌 개척자다.
누군가는 인기 종목에서 박수를 받으며 스타가 된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설원에서 한 나라의 가능성을 만든다.
후자가 바로 스포츠를 진짜로 성장시키는 사람들이다.
■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한다
그녀가 한국을 선택했듯,
이제 한국도 선택해야 한다.
선수를 소모품처럼 쓰고 잊어버리는 체육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역사를 만든 동료로 기억할 것인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해야 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금메달 이상의 것을 남겼다고.
당신 덕분에 한국 바이애슬론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달고 달려준 그 용기에 경의를 보낸다고.
설원 위에서 울린 총성은 이미 기록이 되었지만,
그 총을 들었던 한 선수의 선택은 오래도록 한국 스포츠의 양심을 묻는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오케이
james2
daiki
주성치개새
하리하리
랙왕
Skywalker21
afiguwl
코카콜라
술의눈


비인기 종목 전체 선수 모두를 버리지 않았을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