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공자 가지고 한국에 지랄 발광하는 이유.
1. 동이족
2. 공자 후손의 한국인 귀화
3. 공자 문헌을 모두 한국이 가지고 있음.
3번부터 말하면 문화혁명으로 인해서 공자에 대한 모든 문헌이 사라짐.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선조 아니 고려때부터 공자의 문헌과 공자후손이 자리잡으면서 우리나라 즉 한국이 공자의 직손이 되버림.
구굴링
공자의 후손이 한국으로 귀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였던 공소(孔紹)입니다. 그는 1351년(고려 공민왕)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하여 고려에 귀화한 뒤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이 귀화로 인해 한국의 곡부 공씨가 시작되었습니다.
문화혁명당시 모든 자료가 파기되서 웃긴게
우리나라는 유교관련해서 공자의 문헌집이나 논어 춘추의 형태의 책이 모두 소장되어있고 공자의 후손이 직접 그걸 가지고 이미
편찬된바 [이미 가지고 퍼트린바] 한국에서는 쉽게 볼수 있었으나
중국에서는 그걸 보기 힘들었음. 왜?? 다 없앴으니까.
그래서 중국이 1970~ 대 부터 한국에 공자관련 문헌이나 책에 대한 자세한 상술의 요청을 했고
우리나라는 공자가 중국 사람이니 당연히 주는게 당연하다 해서 자료를 다 소장한걸 전해줌.
그런데 지금와서 말을 바꾸는거임.
우리가 가진 모든 자료를 주고 공자의 후손들이 한국에 귀화한 상황에서 공자는 중국인일뿐 한국인 아니다 라고 뒤통수 때린거.
사실 뒤통수는 아닌데. 조금 어그러 진거임.
왜? 동이족이때문에.
구굴랑 : 동이족의 뜻
동이(東夷)는 중국 역사에서 한족(화하족)이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멸칭하거나 통틀어 부르던 명칭입니다.
고대 산둥성 일대에서 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는 다양한 종족을 포괄했으며,
한민족의 고대 국가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도 여기에 포함되어 기록되었습니다
즉 동이족은 하나의 종족만 가리키는게 아닌 중국 입장에서 동쪽 오랑캐릴 말하는 것임.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실 우리한국 포함] 그것이 맞음
동이가 후에 은나라가 되고 그 은나라의 후손중 하나가 공자였음.
서울신문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은나라 ‘왕실의 후예’ 공자, 二代를 계승한 주나라를 인정하다
입력 : 2018-01-15 22:18 ㅣ 수정 : 2018-01-15 23:21
<2> 동이족 출신 공자가 만든 중화사관
몇 년 전 한국과 중국, 중화민국(대만)의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된 사건 중에 ‘공자 한국인 설’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고 중국인들이 비난한 것이다.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공자가 동이족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의 억측이 아니라 사마천(司馬遷)이 ‘사기’의 ‘공자 세가(世家)’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공자는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사마천은 공자를 높여서 제후의 사적인 ‘세가’에 서술했다. 사마천은 공자의 만년에 대해 “(제자)자로(子路)가 죽고 공자가 병이 들었다”라고 병들어 쓸쓸한 노후를 묘사하고 있다. 아들 공리(孔鯉:BC 532~481)도 3년 전에 저세상으로 갔다. 공자는 찾아온 제자 자공(子貢)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구나. 아무도 나를 존숭하지 않는구나. 하(夏)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주(周)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은(殷)나라 사람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다. 지난밤에 나는 꿈에서 양쪽 기둥 사이에 앉아 제사를 받았다. 나는 은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사기, ‘공자세가’)
하·은·주(夏殷周)는 빈소를 차리는 예법이 각각 달랐다. 은나라 사람들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리는데 공자는 사후에 양쪽 기둥 사이에서 제사를 받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뿌리는 동이족 은나라라는 것이다. 중국학자들도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공자는 그 7일 후인 노 애공 16년(BC 479) 4월 기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이 전하는 공자의 유언은 ‘나는 은나라 사람의 후예’라는 말이었다.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송(宋)나라 시조인 미자(微子)의 후예였는데 미자는 은나라 왕 을(乙)의 큰아들이자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서형이었다. 공자는 은나라 왕실의 후예인 동이족이었다.
그러니 중국이 지랄하는게 저거 역사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
중국은 빼도박도 못하게 되서 그런거임.
그래서 절대 공자는 한국인 아니고 중국인 이야 라고 지랄 발광 하는거임.
지들이 문화 혁명때 자료 다 없애고 한국에게 도움 요청 하고
고려때 공자 후손들이 귀화해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당에.
역사적으로 보나 후대 자료로 보나 공자 후손으로 보나.
명분이 우리에게 있지 중국에게 있지 않음 ㅋㅋㅋ
그래서 저 지랄 하는거임.
이거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 공자는 중국인 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일뿐 자세히 파고보면 중국인도 아님 ㅋㅋ
그래서 중국역사학자들이 입에 거품물게 하는게 동이족 <- 요단어 꺼내면 넌 이단이다 이지랄 함 ㅋㅋ
스타킹매니아
james2
daiki
주성치개새
하리하리
멀던
랙왕
Skywalker21
afiguwl
코카콜라
술의눈


지들끼리 장작넣고 발화함
중국은 이미 문화혁명당시 다 파괴 되었고 우리나라는 고려때부터 유교문화의 꽃을 피워서 조선조 때까지 공자나 기타 유교문화를 전승을했죠.
거기에 공자 후손들이 전파까지 했구요.
이걸 빌미로 보면 솔직히 공자에 대한 권한이나 칼은 우리가 쥐고 있는게 맞아요. 자료로 보나 후손이 그걸 가지고 퍼트린걸로 보나.
문제는 중국이 발빠르게 장작넣고 모르오 공자는 우리꺼요 하고 한국에 지랄한게 문제죠.
가만히 있으면 주도권이 한국에 갈까봐 그런거구요.
모든 문화[유산] 은 현 시대 누가 계승하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만약 중국이 가만히 놔두면
100년뒤 한국꺼가 될지도 모르죠 ㅋㅋㅋ
대만에도 있어서 각자 제사들은 꼬박꼬박 지내왔음.
다만 공부에서 전통적인 형식에 맞게 제사를 지내던
직계가 다 죽은 것은 사실이고,
방계들이 지내는 제사는 전통과 달라졌을 확률이 커서
성균관 와서 배워감.
그당시 대만으로 이주해서 각자 공자 손씨들이 각 세계에 퍼지게 됬죠.
미국에도 있습니다. 일본에도 있구요
하지만 제사를 지낸 건 공자씨인 고려종 때도 있었구요.
대표적인게 위에 말씀 하신 성균관에서 배워간것도 중국입니다. ㄷㄷㄷㄷ
중국 공자의 후손들이 성균관에서 배워갔죠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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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전통 유교 의례가 단절되었던 중국은 한국의 성균관에서 공자의 제사 의식인 석전대제와 무용(석전일무)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성균관은 공자의 77대 적손(공덕무 등)을 초청해 강연을 열고 교류를 이어왔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성균광에서 보는 공자 제사가 직접적인 직계 제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고려때부터 내려온 공씨 가문에서의 제사가 실질 방계라고 하지만 직계속이 싸그리 사라진 현시대에
옛 고려때부터 지내온 우리나라 제사가 진짜일 확률이높아서 라네요.
그래서 중국 공자의 씨들이 와서 성균관 제사를 참관하고 배워간게 아닌가 합니다.
애당초 이덕일 전공은 독립운동사임.
그리고 동이족이란 표현 자체가 짱개, 조센징, 빵즈 같은 비속어인데..
그게 뭘 좋다고..ㅋ
그리고 동이족 자체의 표현이 비속어는 맞는데 그 비속어가 중국과 동이의 차이를 보여준 거에요
[중국에서 그렇게 말하는걸 보고 중국인이다 표현을 안하죠]
중국인이 공자 보고 빵즈 빵즈 거리다가 후대에 공자는 빵즈지만 우리중국인이다 하는 꼴이라서 ㅋㅋ [그래서 비속어지만 동이족의 어원이 중요한거임]
일본인으로 따지면 조센징 조센징 하다가 후대에 일본인이 한국은 조센징 이지만 일본인이다. 라를 꼴 ㅋㅋ 말이 안되죠?
그점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 라는겁니다. 말이 안되는 논점이거든요.
중국 공자 사상 제일 잘 빨아온 나라가 한국임 ㅋㅋㅋ 유교문화의 꽃이 그거인데.....
공자는 자신을 항상 "노"나라 사람이라고 여겼음.
민족 국가 개념은 봉건국가가 붕괴하고
국민들이 선거권을 가지며 근현대에 만들어짐
(선거권이 매우 중요한 요소,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절대 권리를 침범할수 없게되는 근거가 됨)
하지만, 중국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국민들이 선거권을 가질수 없는게 확정이기에
정확히 말하면 중국이라는 국가는 봉건국가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소수의 공산당 간부(현대판 황제와 귀족)를 제외한 중국인 전체가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걸 뜻함.
중국은 마오쩌뚱이 추진한 경제정책인 대약진운동의 대실패로
수천만명이 아사함.. 그 후폭풍과 책임을 중국인의 나쁜 습관과 고대 중국 사기꾼 사상가(공자) 탓으로 돌림..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공산당,공산당 사상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함.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도 마오쩌뚱의 지령하에 공산당(화교)를 제외한 모든 걸 죽이고 파괴한 캄보디아판 문혁임)
문혁시절 불교,기독교,유교,이슬람,자본주의,문화,문학,예술
인본주의적인 관념 모두를 파괴함(기술과 과학은 그나마 살려둠..)
공산당과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사이비 종교화 되었고,
신성불가침의 유일신(공산당 간부가 신) 본건+신정 국가로 변화함.
(그래서 모든 종교를 탄압하고 말살하고 관리함, 공산당이 종교화됬기 때문)
중국은 이제 본질이 봉건+신정 국가이기 때문에
공산당 간부가 신이기에, 국민에게 선거권을 줄수가 없게됨.
공산당 간부는 신으로 모든 걸 컨트롤하지, 국민 따위의 하찮은 노예에게 선택 당하는 낮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임.
그런데 자신들이 나쁜 습관이라고 학살하고 파괴
(공자 묘지 부관참시, 공자 유골은 똥통에 버려서 끝장냄, 이걸 지시한 넘이 마오쩌둥이며 천안문 대형초상화로 중국의 신이 됨)
한국과 일본을 보니 공자 파괴안해도 잘먹고 잘나가고 잘삼..
이걸 부정할수 없게 되면서, 모순이 생김..
문혁으로 공자 파괴한 공산당의 책임화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한국놈들이 공자를 훔쳐갔다" "한국이 잘사는 건 모두 중국 것을 도둑질 해서다"
이렇게 선빵을 날리고, 중화사상으로 외국 혐오가 체질인 중국인들이
"그러면 그렇지 한국놈들이 잘사는 건, 잘나가는 건, 문화는 모두 원래 중국의 것이다. 도둑놈들!!!! 한국인을 죽여라!! 한국을 파괴하라!!"
이렇게 중국 공산당한테 쌓인 스트레스를 전환해 한국을 스트레스 해소용 위치로 만들게 됨..
중국 공산당은 무섭고, 한국은 우습고,
아무 이유없이 한국과 한국인을 때려도 굽신거리며 중국인들한테 복지와 사죄만 해대니까,
중국인은 사절할 이유가 없는 것..
이게 사건의 전말임..
다만 전통문화[공자] 나 자료[논어 춘추 등등] 는 우리가 쥐고 있고 우리가 전통이기에
사실 중국이 배아파 하는거죠.
지들이 없애놓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빌고 가져가면서 지랄 하니 ㅋㅋㅋ
얘들은 문화대혁명에서 싸그리 없애고, 학교에서도 공자 안가르쳐줘서 공자가 누군지 뭔지도 모르는 세대가 있을텐데..
(요즘 다시 교육과정에 공자 넣어서 안다지만)
그 이왕 공산당 독재해서 운영하는거 계속 유교 버리고 살지, 만다고 한국을 귀찮게 하는지... 그냥 지들 하던대로 다 말살해버리고 살지... 어휴... 말살해버린다고 지랄할땐 언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