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입장에서
조선 : 요동으로 넘어오지마 여기서 끝내자
화령 : 한판 붙어보자 몽골 찌끄레기들아
이런 뜻이라 이성계가 마지막 선택권을 넘긴거에요.
저때 주원장이랑 이성계랑 사이 엄청 안좋았고 한판 뜨냐마냐 하던 시기였거든요.
국호 조선으로 정해서 강역 확정짓고, 대신 공물 낮춰주고 국혼 하냐마냐 하고 사이 급 좋아짐.
그리고 주원장이 죽을때 유훈으로 조선이랑 절대 싸우지마라 못밖고 끝났어요.
저게 왜 그러냐면요
고려입장에선
조선 : 우리는 옛 조선(고조선) 계승이고 몽골과 인연끊고 요동 동쪽에서 조용히 살거야
화령 : 이성계의 옛고향 함경도 영흥의 옛 이름이 화령인데, 사실 북원의 수도인 카라코룸의 한자 이름도 화령, 한마디로 몽골과 손잡는다는 협박
우리는 너희에게 선택권을 넘길테니 한판 붙어도 시비는 니네가 먼저 건거다
대신 사이좋게 지내자면 형으로 모시고 끝낼께. 이런 명분싸움이었어요.
절대 저게 이름까지 정해달라 굽신거린게 아니에요.
물론 정통성도 부족한 쿠데타 왕조라서 조선 골라주면 그걸 정권 정통성의 명분으로 삼을 생각도 있었지만요.
조선 초기는 힘들다기 보단 방귀좀 뀌며 살던 시절이에요.
그래서 세종때까지 줄기차게 두만강 넘어서 여진족들 두들겨 패며 토관지위를 내리고 그 지역을 지키는 사병화 해서
너 멀리있는 명나라쪽 줄설래, 가까이 있는 나한테 붙을래 하며 지속적으로 세과시 하던 시기죠.
안타깝게도 계유정난때 스노우볼이 굴러 강력한 북방군이 다 소멸되고 사병도 완전 해산하고
국가 방위체제가 진관의 상비군 주둔이 아닌 제승방략제로 바뀌면서 조선의 군사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내부 반란 위협이 낮아진 대신 문을 걸어 잠그고 안주하는 시대로 전환한거에요.
그리고 임진왜란때 대가를 치르죠.
진관체계는 조선 각 지역을 진으로 나눠서 외침이 있을 경우 주변 진이 주진을 지원하며 독자적으로 방어하는 체계입니다 군사 지휘권을 주진 관리가 가지고 있고요
이걸 성종때는 주변 진이 주진을 지원하지 못하게 제한을 둬버립니다 그냥 공격받은 진이 스스로 방어해야하는거죠 소규모 약탈적인 침략만 있던 시절에는 어느정도 먹히던 방위체계였지만
선조때 니탕개의 난이라는 대규모 여진족 침략이 발생하고 이 국지방어 전략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니탕개가 각개격파로 휘젓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선조때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고 군사체계를 개편한게 제승방락제입니다
이건 외침이 발생했을때 지방에서 군사를 징집하고 중앙에서 지휘관을 급파해서 그 지휘관이 지휘해서 싸우는 겁니다
군사 개편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조선군은 익숙하지 않은 군사체계에 우왕좌왕하게 되어 더 큰 피해를 입게되고 임진 초기부터 궤멸 당해버리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죠
그렇다고 진관체계를 유지했으면 더 나았을껀가라는 의문에는 절대 노입니다
진관체계는 왜구나 몇백병이 몰려오는 여진족의 약탈에나 효과적인 방법이였을뿐 20만대군이 드랍한 임진왜란 같은 전쟁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위체계였습니다
약 3만명이 쳐들어온 니탕개의 난때도 속절없이 부서진게 진관체계였으니까요
조선 : 요동으로 넘어오지마 여기서 끝내자
화령 : 한판 붙어보자 몽골 찌끄레기들아
이런 뜻이라 이성계가 마지막 선택권을 넘긴거에요.
저때 주원장이랑 이성계랑 사이 엄청 안좋았고 한판 뜨냐마냐 하던 시기였거든요.
국호 조선으로 정해서 강역 확정짓고, 대신 공물 낮춰주고 국혼 하냐마냐 하고 사이 급 좋아짐.
그리고 주원장이 죽을때 유훈으로 조선이랑 절대 싸우지마라 못밖고 끝났어요.
고려입장에선
조선 : 우리는 옛 조선(고조선) 계승이고 몽골과 인연끊고 요동 동쪽에서 조용히 살거야
화령 : 이성계의 옛고향 함경도 영흥의 옛 이름이 화령인데, 사실 북원의 수도인 카라코룸의 한자 이름도 화령, 한마디로 몽골과 손잡는다는 협박
우리는 너희에게 선택권을 넘길테니 한판 붙어도 시비는 니네가 먼저 건거다
대신 사이좋게 지내자면 형으로 모시고 끝낼께. 이런 명분싸움이었어요.
절대 저게 이름까지 정해달라 굽신거린게 아니에요.
물론 정통성도 부족한 쿠데타 왕조라서 조선 골라주면 그걸 정권 정통성의 명분으로 삼을 생각도 있었지만요.
그래서 세종때까지 줄기차게 두만강 넘어서 여진족들 두들겨 패며 토관지위를 내리고 그 지역을 지키는 사병화 해서
너 멀리있는 명나라쪽 줄설래, 가까이 있는 나한테 붙을래 하며 지속적으로 세과시 하던 시기죠.
안타깝게도 계유정난때 스노우볼이 굴러 강력한 북방군이 다 소멸되고 사병도 완전 해산하고
국가 방위체제가 진관의 상비군 주둔이 아닌 제승방략제로 바뀌면서 조선의 군사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내부 반란 위협이 낮아진 대신 문을 걸어 잠그고 안주하는 시대로 전환한거에요.
그리고 임진왜란때 대가를 치르죠.
더욱이 진관체계는 세조때 만들어진거구요
세조때 진관체계 만듦
성종때 진관체계를 개편 (국지형 체계로 바뀜)
선조때 제승방락제로 개편 (니탕개의 난이 영향)
진관체계는 조선 각 지역을 진으로 나눠서 외침이 있을 경우 주변 진이 주진을 지원하며 독자적으로 방어하는 체계입니다 군사 지휘권을 주진 관리가 가지고 있고요
이걸 성종때는 주변 진이 주진을 지원하지 못하게 제한을 둬버립니다 그냥 공격받은 진이 스스로 방어해야하는거죠 소규모 약탈적인 침략만 있던 시절에는 어느정도 먹히던 방위체계였지만
선조때 니탕개의 난이라는 대규모 여진족 침략이 발생하고 이 국지방어 전략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니탕개가 각개격파로 휘젓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선조때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고 군사체계를 개편한게 제승방락제입니다
이건 외침이 발생했을때 지방에서 군사를 징집하고 중앙에서 지휘관을 급파해서 그 지휘관이 지휘해서 싸우는 겁니다
군사 개편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조선군은 익숙하지 않은 군사체계에 우왕좌왕하게 되어 더 큰 피해를 입게되고 임진 초기부터 궤멸 당해버리는 결과를 불러오게 되죠
그렇다고 진관체계를 유지했으면 더 나았을껀가라는 의문에는 절대 노입니다
진관체계는 왜구나 몇백병이 몰려오는 여진족의 약탈에나 효과적인 방법이였을뿐 20만대군이 드랍한 임진왜란 같은 전쟁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위체계였습니다
약 3만명이 쳐들어온 니탕개의 난때도 속절없이 부서진게 진관체계였으니까요
수도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에다가 가져다 놓음
뭔가 안 맞아
무조건 조선이 선택될수 밖에 없게끔
뭐 어쩌겠어요
유교를 받아들이고 위아래 구분하는 서열 체제인 성리학이 조선 중기 때 성리학 체제가 되면서
철저히 조선이 신하가 되버림..
고조선 을 승계한다는 뜻인걸 나중가서 알고
일을 주도한 정도전을 매우 싫어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