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건 한 YB 밴드
퍼온 글입니다
오늘은 이 가수의 선행을 알리고자. 글을 써야겠다 생각이 드네.
조선인 3000여명이 동원된 단바의 망간광산
교토 북부를 중심으로 한 단바 지역에는 한 때 약 300개의 망간 광산이 있었다.
채굴은 약 1896년경부터 1983년까지 이어졌고 망간은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데 필요 특히 전쟁중 포신, 총신을 만드는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이 광산 노동의 상당 부분에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됐다.
(일본사회에서 차별받던 피차별부락민들도 있었다)
좁은 갱도에서 발파하고 망간을 캐내는 과정에서 분진을 마셔 진폐증에 걸린 노동자도 많았지만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흘러 재일조선인 이정호가
“무덤은 필요없다, 광산을 기념관으로 만들겠다. 여기가 내 무덤이다.” 라고 말하며
조선인 강제동원.강제노동과 망간광산 노동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단바망간 기념관 설립하기로 한다.
(이정호도 망간광산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 역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망간광산에서 일했으며 이정호 자신도 진폐증을 앓았다)
이정호와 아들 이용식등 가족은 약 3년에 걸쳐 직접 갱도를 정비했다. 약 300미터 정도를 사람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실제 광산 노동모습을 재현하고 광석, 도구사진과 조선인 노동자들의 자료를 모았다. 기념관 측에 따르면 조선인 강제동원, 피차별부락민의 노동, 진폐증 같은 어두운 역사를 전시하면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반응 때문에 공공기관의 지원없이 가족이 개인적으로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기념관은 누가 망간을 캤는가, 왜 그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는가, 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1989년 단바망간기념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했다. 1995년 이정호가 사망한 후 아들 이용식 관장이 운영을 이어갔고, 민간이 기념관을 유지하다 보니 흑자를 내지 못하고 연간 약 500만 엔의 적자가 계속됐다고 한다.
가족의 연금까지 운영비로 들어갔고 시설의 노후화와 관람객 감소까지 겹쳐 20년을 버티다가 2009년 5월에 폐관하게 되었으나
아들인 이용식 관장이 재건을 결심하고 2010년 6월 재건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한국에서 재건지원에 나선 인물이 바로 ***이다.
그는 재건을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었고
콘서트 표어는 「痛みのなかに希望が、過去のなかに明日がある」
→ “아픔 속에 희망이 있고, 과거 속에 내일이 있다.” 였다.
입장료는 7000엔이었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기념관을 위해 표를 샀다.
2010년 11월 27일 교토회관에 1300여명의 재일교포와 한국인들이 모였고
교토회관에서 한국에서 온 가수의 한국노래가 울려퍼지자 재일교포들은 환호성과 눈물로 화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로 기념관은 2011년 재개관을 할 수 있었다.
현재 교토시에서는 일본 유일의 망간 견학광산이라 소개하며 동시에 평화, 인권, 산업사, 자연과학이라는 세가지 목적을 가진 기념관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선콘서트의 주인공
윤도현과 YB밴드!!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음악으로 그 마음에 불을 지핀 한 가수의 진심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공간.
단바망간기념관을 찾아주세요!
오늘은 이 가수의 선행을 알리고자. 글을 써야겠다 생각이 드네.
조선인 3000여명이 동원된 단바의 망간광산
교토 북부를 중심으로 한 단바 지역에는 한 때 약 300개의 망간 광산이 있었다.
채굴은 약 1896년경부터 1983년까지 이어졌고 망간은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데 필요 특히 전쟁중 포신, 총신을 만드는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이 광산 노동의 상당 부분에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됐다.
(일본사회에서 차별받던 피차별부락민들도 있었다)
좁은 갱도에서 발파하고 망간을 캐내는 과정에서 분진을 마셔 진폐증에 걸린 노동자도 많았지만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흘러 재일조선인 이정호가
“무덤은 필요없다, 광산을 기념관으로 만들겠다. 여기가 내 무덤이다.” 라고 말하며
조선인 강제동원.강제노동과 망간광산 노동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단바망간 기념관 설립하기로 한다.
(이정호도 망간광산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 역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망간광산에서 일했으며 이정호 자신도 진폐증을 앓았다)
이정호와 아들 이용식등 가족은 약 3년에 걸쳐 직접 갱도를 정비했다. 약 300미터 정도를 사람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실제 광산 노동모습을 재현하고 광석, 도구사진과 조선인 노동자들의 자료를 모았다. 기념관 측에 따르면 조선인 강제동원, 피차별부락민의 노동, 진폐증 같은 어두운 역사를 전시하면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반응 때문에 공공기관의 지원없이 가족이 개인적으로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기념관은 누가 망간을 캤는가, 왜 그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는가, 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1989년 단바망간기념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했다. 1995년 이정호가 사망한 후 아들 이용식 관장이 운영을 이어갔고, 민간이 기념관을 유지하다 보니 흑자를 내지 못하고 연간 약 500만 엔의 적자가 계속됐다고 한다.
가족의 연금까지 운영비로 들어갔고 시설의 노후화와 관람객 감소까지 겹쳐 20년을 버티다가 2009년 5월에 폐관하게 되었으나
아들인 이용식 관장이 재건을 결심하고 2010년 6월 재건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한국에서 재건지원에 나선 인물이 바로 ***이다.
그는 재건을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었고
콘서트 표어는 「痛みのなかに希望が、過去のなかに明日がある」
→ “아픔 속에 희망이 있고, 과거 속에 내일이 있다.” 였다.
입장료는 7000엔이었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기념관을 위해 표를 샀다.
2010년 11월 27일 교토회관에 1300여명의 재일교포와 한국인들이 모였고
교토회관에서 한국에서 온 가수의 한국노래가 울려퍼지자 재일교포들은 환호성과 눈물로 화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로 기념관은 2011년 재개관을 할 수 있었다.
현재 교토시에서는 일본 유일의 망간 견학광산이라 소개하며 동시에 평화, 인권, 산업사, 자연과학이라는 세가지 목적을 가진 기념관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선콘서트의 주인공
윤도현과 YB밴드!!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음악으로 그 마음에 불을 지핀 한 가수의 진심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공간.
단바망간기념관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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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쉐리
Ay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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