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스캐너 - 지지리도 가난했던 이유가...
가난의 이유가 이런 건 아니겠지요..
양쪽 다 사진까지 있네요..
아래 작은 글씨까지 꼼꼼하게 읽어보세요..
살펴보니 210 대 19는 남양 홍과 풍산 홍이 다 합쳐진 숫자로 보이구요.
그리고 낮에 해봤을때랑 숫자가 바뀌었고..
첨했을땐 9대1이었는데..지금은 14대2
결론은 그겁니다..평범한 사람들은 지뢰가 어디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가난의 이유가 이런 건 아니겠지요..
양쪽 다 사진까지 있네요..
아래 작은 글씨까지 꼼꼼하게 읽어보세요..
살펴보니 210 대 19는 남양 홍과 풍산 홍이 다 합쳐진 숫자로 보이구요.
그리고 낮에 해봤을때랑 숫자가 바뀌었고..
첨했을땐 9대1이었는데..지금은 14대2
결론은 그겁니다..평범한 사람들은 지뢰가 어디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홍씨 성씨가 국내에 40개 가량되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러시아, 중국, 북한의 그것들과는 엄연히 다릅니다)에 대해서는 사실 별 거부감도 없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이유는 초기 민주주의+자본주의의 실패 때문이거든요.
결국은 공산주의 이론은 실패한 이상론 중 하나 정도로 봅니다.
민족주의자들에게 공산주의는 단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라고 결론 내렸습니다.(김일성과 홍범도 장군의 행보를 보시면...)
그리고 현재의 시각만 가지고 과거의 인물을 논하는 건 그 당시 시대상에 대한 고려없이는 오판의 가능성이 큽니다.
근데 기본을 무시하시네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단기적인 이득보다 장기적인 이득이 좋다 등등의 상식으로 봤을때
홍범도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구 공산주의자도 아닌 개인의 이득과 생존이 1등인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을 버리고 소련으로 갈아타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죠
물론 개인적으로는 홍범도가 이해됩니다
없는 밑바닥일수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되는게 당연한거죠
하지만 남의 내로남불을 보는거 만큼 불쾌합니다
양심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아들에게 어린애들에게 홍범도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수 있겟어요?
공산주의 든 자본주의 든 좌우든 진보 보수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데 왜 홍범도를 감싸는지 모르겟네요
홍범도가 우리에게 득을 준게 뭐가 있나요?
독립운동으로 가족을 다 잃고, 공산당 입당해서 부귀영화를 누린것도 아니고..동기 또한 동포를 위함이 있었고..
(글이 길어지다 보니 쓰다가 날라가서 간략하게만 적습니다.)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공과 사가 있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단, 사를 논함에 있어서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죠.
이후의 역사를 아는 우리가 과거 시대의 인물을 논함에 있어서 과거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네요.
애초에 왜 제가 홍범도 장군을 빤다고 생각하셨는지....그것도 의문이고?..전투 이름 말곤 잘 몰랐는데...
그래도 확실히 전 아이한테 공만 알려주고 사를 숨기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내용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라죠.
좋은 이야기만 해주다 보면....하영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요?
홍범도 장군이 현대 한국인에게 득을 준게 없다니깐요
악명만 높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독립운동가라고 훌륭한 사람만 있는것도 아닙니다
독립운동가는 무조건 훌륭하다고 가르치는거 자체가 문제죠
차라리 신이 허락한건 모든지 가능하다고 가르치는게 이득이죠
그것보다 더 좋은건 양심을 지키면서 성공하는것
그런 좋은 세계관을 자녀에게 가르쳐 줘야하는겁니다
자꾸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사관이라는게 있습니다
당연히 현대 한국인 입장에서 봐야 되는거라구요
글구 하영같은일이 나오는건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게 아니라
국가가 매국을 권장해서 그런겁니다
매국 사기 횡령 배임 등등의 증거를 잡기 힘든일은
한번 잡히면일번백계로 강하게 다스려야하는데
쉽게 봐줘버리는 나라 시스템이 문제인거죠
악명만 높은 사람이에요...
먼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이야기 해 주시죠.
일단 첫단추부터 안맞는 상황이니 이어지는 이야기가 제대로 맞물릴리가 없으니..
자유시 참변 이것만 해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공적이 사라지고 과만 남습니다
홍범도의 배신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다 죽은건 알아요?
홍범도 때문에 고려인이 얼마나 죽고 고생한줄 몰라요??
내가 이번에 공부를 더 하네요
보면 볼수록 홍범도는 극혐이네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데 그게 무슨 공부인가요?
답을 정해놓고 다 끼워 맞추는거지.
AI 검색해보니 제법 나오는군요
[[ 광복절을 맞아 이념과 진영을 떠나 **'양심을 지키면서도 성공(성취)을 거둔 인물'**을 꼽는 것은 역사적 평가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친일과 항일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굽히지 않고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들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제·실업계: 백두진, 유일한 (실천적 민족주의와 기업가 정신)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양심과 원칙: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미국 맹호군 창설 지원 등)했으며, 해방 후에도 정경유착을 거부하고 정직한 납세와 기업 활동을 고수했습니다.
성공: 한국 최고의 제약 회사인 유한양행을 일구었으며, 혈연관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오늘날까지도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로 꼽힙니다.
2. 학술·사상계: 정인보, 안재홍 (민족의 혼을 지킨 지성)
정인보 (위당)
양심과 원칙: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문을 받으면서도 우리 역사와 언어를 지키기 위해 사학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해방 후 좌우파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며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성공: 《조선사연구》 등을 통해 한국사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단군 중심의 민족사관을 정립한 조선 학계의 거목으로 성공적인 학문적 성취를 이뤘습니다.
3. 문학·문화계: 이육사, 윤동주 (끝까지 펜으로 저항한 시인)
이육사
양심과 원칙: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의열단 활동을 하며 17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시를 통해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면서도 인간적 고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공: 투옥 중 감옥에서 순국(1944년)하여 해방을 보지 못했으나, 그가 남긴 꺾이지 않는 선비 정신과 문학적 유산은 한국 문학사와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정신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4. 정치·외교계: 조소앙 (삼균주의로 이념의 균형을 잡은 정치가)
조소앙
양심과 원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이론가로 활동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주창했습니다.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성공: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기초를 다졌으며, 좌우 합작 운동의 중심에서 민족이 나아갈 올바른 정치·경제적 이념의 기틀을 완성했습니다.
???? 시대를 관통하는 교훈
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민족에 대한 양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단순한 권력이나 부의 축적이 아니라, 시대를 아파하면서도 올바른 가치를 다음 세대에 물려준 유산에 있음을 이들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1. 김규식 — 정치적 입장보다 원칙을 지킨 사람
김규식은 독립운동가이면서 해방 이후에는 좌우합작을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좌익과 우익 어느 한쪽에 완전히 편승하지 않고 **“분열해서는 나라를 제대로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특히 해방 직후처럼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노선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2. 조만식 — 신념과 현실적 성공을 함께 가진 사람
평안도의 민족지도자였던 조만식은 물산장려운동과 교육운동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해방 후 소련군정과 공산주의 세력의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쉽게 바꾸지 않았고, 결국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면서 숙청되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민족주의자이면서도 극단적인 폭력이나 이념보다는 민족의 자립과 도덕성을 중시했다는 겁니다.
3. 안창호 —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
만약 질문하신 **“양심을 지키면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저는 안창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합니다.
안창호는 단순히 일본에 저항하는 것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일본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스스로가 제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국민 개개인의 책임과 실력 양성을 강조했습니다.
흥사단, 교육, 인재 양성 등에 평생을 바쳤고,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즉 독립운동 + 자기계발 + 교육 + 도덕성을 하나로 묶은 사람이죠.
4. 여운형 — 좌우를 넘어섰던 사람
여운형은 특히 질문하신 **“좌우를 떠나서”**라는 기준에 잘 맞는 인물입니다.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순한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기 어렵고, 민족주의적인 성격도 강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좌우합작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우익에게도, 극좌에게도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1947년 암살당했죠.
여운형의 인생에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자신의 이념보다 민족과 현실을 앞세우려 했다는 점입니다.
5. 김성수 — 상당히 복잡하지만 반드시 살펴볼 사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김성수는 교육·언론·경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발전시키고 동아일보를 운영하는 등 근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후반의 행적 때문에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양심을 지킨 성공한 사람”이라는 질문에 무조건 넣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인물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100% 선하거나 100% 악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6. 이회영 — 성공을 버리고 양심을 선택한 극단적인 사례
이회영 집안은 당시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명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이회영과 형제들은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사용하고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즉 이 사람은 질문하신 “성공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의 재산과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양심을 선택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회영을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봅니다.
그런데 저는 한 사람을 더 넣고 싶습니다. 바로 이승만입니다.
이승만은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입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공적도 분명히 있고, 대한민국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대통령 재임 중 독재와 부정선거, 정치적 탄압이라는 심각한 과오도 있습니다.
따라서 “양심을 지킨 사람”이라는 질문에는 이승만을 그대로 넣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승만은 공적과 과오를 동시에 놓고 봐야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준을 세운다면
광복절에 사람을 평가할 때 저는 이렇게 4가지로 나누겠습니다.
기준
대표적인 인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
이회영
도덕·교육·인재 양성을 중시
안창호
좌우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휩쓸리지 않음
김규식·여운형
민족의 자립과 원칙을 지킴
조만식
공적과 과오가 극단적으로 공존
이승만·김성수
그리고 저는 안창호, 김규식, 조만식 세 사람을 특히 눈여겨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사람은 단순히 **“일본에 반대했다”**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가?”
라는 기준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사족을 더 한다면
자꾸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에 합당한 인물은 홍범도가 아니라
김구선생님과 이승만 초대대통령 친일파 윤치호 정도가 되야 어울리지 않을까요?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인간은 완벽할 수가 없어요.
누구나 다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단지 보여지는 부분이 더 확대되어 보이는 것 뿐이지..
저한테는 이승만 만한 쓰레기가 없는데..애초에 친일파다 뭐다 당신과 이런말을 나누고있는 원인을 제공한 가장 큰 인물이거든요?
손해본거 있나요? 있으면 댓글 적어주세요
그게아니면 10원 한장이라도 이득을 봤을텐데요?
여자들 끼리도 아무리 미워도 밥 사준 언니는 욕 안해요
이승만이 님한테 수십번 수백번 밥 사줬을꺼여요
그리고 설마 독립운동가들 때문에 광복한거라고 생각 하고 있나요?
그 홍범도의 배신으로 일어난 자유시 참변 때문에 스스로 독립할수있는 가능성이 날라간거 모르나요?
자유시 참변에 대해서는 정황뿐인데.. 증거가 어디 있다는 거죠?
기반이 약한 이승만이 이용한게 친일세력이예요. 그 친일세력이 반공애국으로 포장해서 요직을 차지하고, 민족주의자들에게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워버렸죠.
그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국내로 들어왔을때 뭘 할 수 있었겠어요? 대부분 가난하게 살게 된 이유가 그겁니다.
순사였던 놈들이 경찰을 하고 있는데 어떤생각이 들겠어요? 결국 반민특위도 강제로 없앴잖아요.
이승만이 이용만하고 내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몰래 친일 명단이라도 만들어 뒀을 겁니다.
근데 그런 의지가 어디 보이던가요?
손해본거요? 결국 친일 뿌리 못뽑았잖아요.이게 저만의 손해인가요? 친일은 잘살고 독립운동가는 망한다는 기형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는데.
연합군이 승리해서 광복한거 맞죠. 근데 거센 저항이 없었다면 승리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요?
매국 사기 등등은 증거 잡기 힘들다고요
정황상 홍범도의 배신은 거의 확실하고 그걸로 한국에 무궁한 해를 끼친거임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지 않고 광복군이 한반도 안으로 진군했으면 지분을 요구 할수 있었겟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글 몆개로 타인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득실을 보자는거죠
님이 이겻다 치고 여기 까지 하겟습니다
저는 진보 성향입니다 공격하지 마세요
만주벌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생각해보는 면도 필요함
일본제국주의의 팽창을 막으려는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의 아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