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푸틴은 나름 명분은 있어요~
나토 창설할 당시 약속이 나토군을 독일보다 동쪽으로 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전쟁나기 직전엔 우크라이나에서 나토군 훈련하고 있었음
내 목 동맥옆에서 칼춤 추는데 가만히 있는게 이상하죠.....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역시 2월 초순에 걸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지도부에게
"나토가 1인치도 동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약속했다.
그는 특히 이 약속은 "나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베이커는 소련 지도부뿐만 아니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는 콜이 고르바초프를 만나 독일 통일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는 데에 결정적인 사유가 되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교장관도 1990년 4월 11일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영국은 소련의 이익과 존엄을 해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5월 18일에 고르바초프를 만난 베이커는 "우리의 정책은 소련으로부터 동유럽을 분리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5월 25일 고르바초프에게 나토 동진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군사 블록을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물론이고 나토도 해소되었으면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5월 30일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어떤 형태로도 소련을 해롭게 할 의도도 생각도 없다"며 "나를 믿어달라"까지 말했다.
정상회담에 동석한 베이커는 나토 확대 자제를 포함한 9가지 보장을 거듭 밝혔다.
대처의 후임자인 존 메이어 총리는 소련의 드미트리 야즈노프 국방장관이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묻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서방 지도자들의 약속을 접한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통일뿐만 아니라 독일이 나토에 잔류하는 것까지 동의했다.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선 말이다.
이를 거듭 확인하기 위해 소련 정부는 1991년 7월 나토 본부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만프레트 워너 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나토의 강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소련 대표단은 "워너가 나토 확대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국무부는 나토 동진 시도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부시 행정부의 공개적인 입장도, 소련에 약속한 것도 이것이었다. 그런데 국방부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국방부는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에 "조금은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훗날 '네오콘'의 핵심으로 불리게 되는 딕 체니였다.
체니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군수산업체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 군부-의회-싱크탱크-언론 등을 상대로 광범위하고도
치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미국 외교정책을 '군사화'하는 데에 앞장섰다. 여기에는 나토의 동진과 미사일방어체제(MD)도 포함되었다.
'민주주의의 확대'는 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수사로 남용되었다.
보다 못한 로버트 게이츠는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놓고"
이를 밀어붙인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중앙정보국(CIA) 부국장과 국장을 지낸 인물로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었다.
정리하자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냉전 종식 및 독일 통일 과정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소련에게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약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이해와 해법에 큰 함의를 지닌다.
1990년 5월 31일 백악관에서 부시를 만났던 고르바초프는 부시를 비롯한 미국 고위층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소련 인민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심각한 위험이 생길 것이다. 이건 허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이란 보다 난이도가 더 여려운데
나토 창설할 당시 약속이 나토군을 독일보다 동쪽으로 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전쟁나기 직전엔 우크라이나에서 나토군 훈련하고 있었음
내 목 동맥옆에서 칼춤 추는데 가만히 있는게 이상하죠.....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역시 2월 초순에 걸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지도부에게
"나토가 1인치도 동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약속했다.
그는 특히 이 약속은 "나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베이커는 소련 지도부뿐만 아니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도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이는 콜이 고르바초프를 만나 독일 통일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는 데에 결정적인 사유가 되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교장관도 1990년 4월 11일 고르바초프를 만난 자리에서
"영국은 소련의 이익과 존엄을 해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5월 18일에 고르바초프를 만난 베이커는 "우리의 정책은 소련으로부터 동유럽을 분리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5월 25일 고르바초프에게 나토 동진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군사 블록을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물론이고 나토도 해소되었으면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5월 30일 워싱턴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어떤 형태로도 소련을 해롭게 할 의도도 생각도 없다"며 "나를 믿어달라"까지 말했다.
정상회담에 동석한 베이커는 나토 확대 자제를 포함한 9가지 보장을 거듭 밝혔다.
대처의 후임자인 존 메이어 총리는 소련의 드미트리 야즈노프 국방장관이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묻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서방 지도자들의 약속을 접한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통일뿐만 아니라 독일이 나토에 잔류하는 것까지 동의했다.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선 말이다.
이를 거듭 확인하기 위해 소련 정부는 1991년 7월 나토 본부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만프레트 워너 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나토의 강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소련 대표단은 "워너가 나토 확대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국무부는 나토 동진 시도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부시 행정부의 공개적인 입장도, 소련에 약속한 것도 이것이었다. 그런데 국방부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국방부는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에 "조금은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훗날 '네오콘'의 핵심으로 불리게 되는 딕 체니였다.
체니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군수산업체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 군부-의회-싱크탱크-언론 등을 상대로 광범위하고도
치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미국 외교정책을 '군사화'하는 데에 앞장섰다. 여기에는 나토의 동진과 미사일방어체제(MD)도 포함되었다.
'민주주의의 확대'는 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수사로 남용되었다.
보다 못한 로버트 게이츠는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놓고"
이를 밀어붙인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중앙정보국(CIA) 부국장과 국장을 지낸 인물로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었다.
정리하자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냉전 종식 및 독일 통일 과정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소련에게 나토의 동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약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이해와 해법에 큰 함의를 지닌다.
1990년 5월 31일 백악관에서 부시를 만났던 고르바초프는 부시를 비롯한 미국 고위층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소련 인민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심각한 위험이 생길 것이다. 이건 허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