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익어가고 이젠 뒤돌아 보면서...
고딩 때는 만양 빨리 돈 벌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대.
오토바이도 사고 싶고, 차도 갖고 싶지만 그건 수준이 안되고.
하고 싶은 건 많은대, 빨리 집에서 나가고 싶고, 부모님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가출도 해봤고.
초딩 땐 불 장난으로 야산도 태워 먹었고. 부모님은 날리도 아니었고. 또래 친구 녀석을 꼬신 바람에 두 집안 풍지박살 날 뻔했고.
다행이 산이 사유지라 부모님들이 싹싹 빌어서 무마 되었고.
동내 돼지 잡을 때 어르신이 살아 있는 돼지 똥구녕에 손을 집어 넣어서 내장을 끄내는 것도 처음 봤고.
도끼로 돼지 목을 내리 쳐 잘르는 것도 보았고. 심장과 간을 도려 내서 젊은 아버지 들 노나 드시는 것도 보았고.
나는 푹 익은 살점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전 목격담은 새카마케 잊은지 오래고.
봄이 오면 마당에 주렁주렁 탐스레 열리는 앵두를 연신 따 먹으면서 가을엔 고야(자두)그 달콤함과 향기에 취했고.
가을이면 밤 나무 아래 바람에 떨어진 밤송이 까기에 정신팔렸죠.
겨울이면 말린 단단한 밤을 입에 오므리며 씹어 먹던 그 달콤함. 참 맛 있었는대.
봄 철 새싹이 트면 찔래 잎사귀와 지천에 널린 나물들 그 신선함과 풋풋한 풀 내음의 고추장 버무린 비빔밥의 그 맛.
산과 들에 돋아나는 더덕 새싹들의 진한 향기에 오히려 자기를 숨겨야 될 진대 유혹을 하니 그 새싹 보라색의 영롱한 자태를 보면 그 어떤 향수보다도 더 향기로왔고.
찔래 숲에 박닥에서 올라오는 새 순을 꺽어 먹을 때 그 맛이란.
야산에 죽은 소나무 뿌리를 캐면 진한 진홍 색상의 영롱한 솔광을 캘 수 있는대. 그 향이 지금의 그 어떤 향수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고.
대보름 아래 솔광을 담아 돌리면 그 탐스런 빛과 더불어 주위를 감싸는 향에 취하지요.
겨울 산행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겨우사리의 탐스런 열매가 어찌나 이쁘던지.
여름엔 인적이 드문 깊은 골짜기 도랑에 자라는 산 미나리의 그 이쁜 자태. 지금은 강 미나리나 재배종이지만 산미나리 의 풍미는 따라가지 못할겁니다(생김도 다름). 당시도
고가 가격으로 거래되었고.
당시 물가로 삼양 쇠고기 라면이 100원 일 당시 1 묶음에 수 천원에 거래됨.
20묶음 정도를 재가 뜻었으니까 용돈은 충분히 하였지요.
둔치나 받 외곽에 자라는 야생종 나물과, 함박 꽃을 피는 파란 도라지하며 각종 야생 약용 식물과 또한 신선한 버섯. 등등... 싸리버섯 식용해서 설사한적도 많고.
식용가능 버섯이라 아버지 한태 배웠고. 곰보 버섯이라고. 넙이가 사람 손 바닥 만한 종은 그 풍미가 대단하였는대 재배가 않된다고 들었고. 그걸로 고기를 감싸
구우면 그 맛은 잊을 수가 었었지요.
마을에 집 마다 모두 소를 키웠는대. 전부 암 소만(암컷) 키웠지요.
다만 우리 집은. 이장님의 꼬드김에 우리 아버지만 유일하게 숫송아지를 들여 키웠고요.
저는 너무 이쁜 송아지가 들어와서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고 강아지 처럼 대해 줬어요. 마굿간에 들어가서 자기도 하고 푹신한 배개 마냥
꼴 배어와서 그 위에서 녀석 배에 기대어 자기도 많이 했지요.
똥도 치우고 청소도 깔끔하게 해주고 겨도 푹신하게 깔아주고. 몸이 성하지 말라고 엉덩이 똥 묻은거 항상 띠어내고 몸 구석구석 빗질 해주었지요.
당시 국민학교 2학년 이었고 녀석 생각 나서 동생 재촉하며 귀가하였지요.
학교 등교 할 때는 이미 부모님은 일찍 마을 받일 가시기 때문에 재가 밭에 말뚝 박아 놓고 거기에 코 뚜레에 걸린 밧줄을 매어 놓고 등요하였지요.
부리나케 달려와서 개울가 가서 등목 시키고 가장 좋아라 하는 칙 넝쿨과 잎사귀를 한쿰 안겨주면 그렇게 맛있게 먹더군요.
더 좋아라 하는 갈대는 몇 군대 없어서 시간 날 때 가서 배어 오는 대 그 억새를 녀석이 그렇게 좋아라 하더군요.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음식)은 갈대,칙 넝쿨, 특식으로는 수박, 호박, 오이 각종 채소 등등...특히 수박을 그렇게 좋아라 하더라고요.
당시 사람도 먹기 힘든 작물이라. 먹고 남은 껍대기만 주었지만. 좀 미안한 생각도 드네요. 미안...
어느 날인가. 재가 고삐를 재대로 묶지 않고 가서 집에 오니깐 이 녀석이 남의 콩받을 휘졌고 다니더라고요. 막말로 재어가 않되는 고삐 풀린
망아지 였어요. 저는 다가갈 수도 없었고. 아버지가 곁에 오지도 말라고 해서 멀찌간이 보는대. 녀석이 워낙 힘이 좋아서 동내 장년층 아버지 또래
및 어르신들 다 나오셔서 재어하려 했는대 실패 했지요.
결론은 그냥 저대로 나둬라... 였습니다. 녀석은 신나게 놀다 힘이 빠졌는지 알아서 집에 들어오드라고요.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본 받 주인(동내 어르신) 께서 너 새끼 내줘라 하셨어요.
그래서 그 밭 주인 암소 묶어 놓고 우리 그 녀석 맘껏 힘 써보라고 하니 덥썩 올라 타더라구요.^^ 지도 맘에 들었을까!
워낙 잘 먹이고 관리를 하다 보니 이 녁석이 엄청 이쁜 거에요. 털도 기름지고 머리와 뿔 생김새도 균형있게 자랐고. 모자란 구석이 없던
녀석이었지요. 반항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녀석인대. 그 계기로 유전자 등록도 되었고. 씨 소로 보전 되었지요.
재가 지켜 본 거만도 10번이 넘으니깐... 줄을 서서 트럭으로 대령할 지경이었지요.
그 때 알게 된거는 숫 소가 이렇게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한 거라고는 입 맛 까다로와서 개천에 난 풀 뜯어다 주면 처다도 않봐서.유심이 관찰하니 녀석이 좋아하는 식성을 알게 되었고. 100프로는 갈대,칙잎(선풀)
이더라고요. 겨울에는 사료 없는 볏집도 않먹는다는 걸 알았고. 그것도 볏집도 죽을 써서 거기에 사료를 줘야 그제야 먹드라고요.
참 식성 까다로워요.
우리집 소만 그랬는 모르겠지만 많지도 않은 1마리 숫소를 키우는대도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니.
그래도 추억이라면 따스한 봄날 마당에 녀석 배에 기대어 숨소리(새김질) 느껴가며 한가로이 잠이 들 때 그 기분 아직도 아련하지요.
누구는 숫 소가 사납다고 하는 대. 저 한태는 마냥 착하고 강아지 보다도 더 순한 양이었으니까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당장의 재산이라고는 숫소 하나 뿐이었는대.
어마어마한(아파트 반값) 가격으로 낙찰 가가 나와서 후에 홀로 되신 어머니 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립다 녀석...
나중 파트는 후에 올리겠습니다. -파트1- 종료
ssan
자유AND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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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쏜다
독버섯


덕분에 옛날 생각에 젖어 봅니다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