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나라가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
더운 나라는 왜 가난할까
-토마스 푸에요 작가
적도에 가까울수록 날씨가 덥다. 그런데 왜 이 나라들은 더 가난할까?
위도와 1인당 GDP를 비교해 보자. 적도에 가까우면서 부유한 나라는 극소수 예외다. 거의 다 초소형 국가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에어컨을 널리 쓴다. 적도 기니는 석유가 풍부하다. 세이셸, 바베이도스, 아랍에미리트, 푸에르토리코 역시 모두 작은 나라다.
이 논쟁은 수백 년간 인종차별적 색채를 띠며 이어졌다.
기원전 350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운 기후에 사는 사람들은 기백이 넘친다"고 말했다.
1750년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과도한 열기가 기력을 빼앗아 사람을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나라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학계는 열악한 제도, 나태함, 땀 배출의 어려움, 서리의 부재, 질병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이론이 하나 있다. 이 현상 대부분을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다. 기존 이론을 먼저 짚어보고, 이 새로운 요인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겠다.
◇사람들이 더운 나라를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1. 온도
"발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에어컨 없는 식당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에어컨이 켜진 곳에 들어가면 30분 만에 뇌가 깨어났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돌아왔다. 더위가 뇌를 절전 모드로 만들어 사고를 멈추게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많다. 기온이 오르면 사람이 게을러지는 게 아니라 생산성이 떨어진다.
기온이 1도(섭씨) 오를 때마다 1인당 GDP는 8.5% 감소한다. 기온은 국가 간 GDP 격차의 23%를 설명한다. 빈곤국에서는 기온 1도 상승이 경제성장률을 1.3%포인트 낮춘다. 더위는 농업과 산업 생산량을 줄이고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한 국가 안에서도 특정 지역 기온이 1도 오르면 GDP가 1.2~2% 감소한다. 기온이 27도를 넘으면 1도 오를 때마다 육체노동 생산성이 4%씩 떨어진다. 기온 1도 상승은 결근율을 5% 높인다.
더운 날씨는 시험 성적도 떨어뜨린다. 기온이 2.2도 오르면 기억력, 반응 속도, 인지 기능 테스트 성적이 10% 하락했다.
날씨가 더우면 정치인들의 어휘가 단순해진다. 고령일수록 심하다. 범죄율과 온라인 혐오 발언이 늘고 교통 체증 시 신경전도 거칠어진다. 교도소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폭력 사태가 줄어들어 에어컨 설치 및 유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더운 곳에서는 잠도 더 설치게 된다.
미국 남부 발전에 에어컨은 필수였다.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건국할 때 가장 먼저 도입한 것도 에어컨이다. 그렇다면 기온이 어떻게 저개발로 이어질까.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2. 이슬점
더운 지역은 대체로 습도도 높다. 습도는 더위를 더 치명적으로 만든다. 곰팡이가 번식해 건강을 위협한다. 기온이 높을 때 습도마저 높으면 체감 온도는 치솟는다. 습도가 100%에 달하면 공기가 포화 상태가 돼 땀으로 체온을 식힐 수 없다. 유일한 생존법은 신체 활동을 멈추는 것뿐이다. 더운 기후에 사는 사람들이 게을러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 탓이 아니다. 기후가 노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3. 질병
더운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건강 상태도 나쁘다. 가난한 나라는 의료 투자를 못 해 질병이 늘어난다. 하지만 더위 자체도 건강을 직접 위협한다.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결핵, 기생충 감염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창궐한다. 아픈 사람은 일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지식을 후대에 전할 수 없다. 질병은 국가를 직접 빈곤하게 만든다. 질병이 많으면 아동 사망률이 높아진다. 부모는 생존 확률을 높이려 더 많은 아이를 낳고, 아이 한 명에 대한 투자는 줄인다. 결국 1인당 생산성은 하락한다. 말라리아는 적도 부근에서 가장 흔하다. 인류는 적도에서 먼 곳부터 시작해 점차 적도 쪽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해 왔다.
4. 서리
질병은 고온 다습한 곳에서 번성하지만, 서리가 내리면 사라진다. 일부 학자는 서리가 병원균을 없애 질병을 막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5. 인종
논란이 많은 이론이다. 직접 검증하지 않아 깊이 다루지 않겠다. 다만 경제 발전에 인종이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있다는 점만 언급해 둔다.
6. 역사적 저개발
서구 열강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해 자원을 착취했고, 그 결과 서구는 부유해졌으나 식민지 국가는 빈곤해졌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과거 식민지는 매우 부유하다. 서구 제국주의에 잘 대처한 나라도 있다. 일본은 스스로 제국주의 국가가 됐고, 중국은 현재 상당한 부를 이뤘다.
식민지가 아니었지만 식민지 이웃 국가만큼 가난한 곳도 있다.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5년 점령당했을 뿐 식민지가 된 적은 없지만,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태국 역시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으나, 역사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보낸 이웃 말레이시아보다 40% 더 가난하다.
반면 서구인의 이주가 거의 없었음에도 가혹한 식민 지배를 겪어야 했던 일부 지역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 대만은 역사의 대부분을 밀림이거나 식민지로 보냈지만 현재는 부유국이다. 싱가포르와 홍콩도 적도에 가깝고 몹시 덥다. 유럽인이 거의 이주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부를 이뤘다.
7. 농작물
환금 작물은 미국 남부처럼 더운 곳에서만 자라며 막대한 노동력을 요구한다. 이는 노예제도로 이어졌다. 남부는 북부보다 훨씬 비생산적인 경로에 갇혔다. 노예 투자는 늘고 자본 투자는 줄었다. 착취적 제도가 자리 잡았다.
8. 제도
이 주장을 전 세계로 확장해 보자. 적도에 가까운 국가는 자연적으로 자원이 풍부하다. 따라서 환금 작물, 석유, 광물 등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제도를 발전시킨다. 이런 자원은 경제에 막대한 현금을 주입해 물가를 끌어올린다. 다른 산업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쇠퇴한다. 이 두 가지 효과를 '자원의 저주'라 부른다.
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북한,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좋은 예다. 지리적 조건은 같지만 우연한 역사적 이유로 제도가 달라졌고, 경제적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유럽인들이 수많은 더운 나라를 식민지화하며 열악한 제도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예외 사례가 남는다. 철저히 식민 지배를 받은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홍콩, 대만의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식민지가 아니었던 에티오피아와 태국의 제도는 열악하다.
애초에 적도에 가까운 나라가 정말 자원이 풍부할까. 잦은 비로 토양이 씻겨 내려가 땅은 척박하다. 아마존, 보르네오, 수마트라섬은 농경지로 개간하기 불가능하다. 자바섬이 생산적인 이유는 화산 덕분이다. 적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거대한 사막을 만드는 건조한 아열대 고압대가 나타난다.
반면 자원이 부족할 것 같은 미국, 캐나다, 중국, 호주는 세계 최대 광업 국가다.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는 최대 석유 및 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미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는 세계 4대 농산물 수출국이다.
아세모글루, 존슨, 로빈슨(AJR)은 더운 나라가 열악한 제도를 갖게 된 원인을 분석해 노벨상을 받았다. 백인들은 더운 기후 탓에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적도 주변을 직접 개척하지 않고, 자원을 최대한 빼앗으려 대리인 통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레이저 등은 유럽인들이 온대 기후 식민지로 더 많이 이주했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차이를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유럽인들이 제도를 더 잘 알았기에 성공적으로 이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 반론이 매우 강력해 노벨 위원회조차 단서 조항을 달아 수상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는 헛점이 많다.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쟁탈전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이 발견된 1800년대 후반에야 시작됐다. 그런데 AJR은 그 이전의 사망률 데이터를 사용했다. 또한 스페인 사람들은 500년 전 멕시코와 콜롬비아에 정착했다. 이들은 열대 질병이 약한 고산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백인 유럽인들이 열대 국가에 정착했음에도 훌륭한 제도를 가져오지 않은 셈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이론이 맞더라도 '나쁜 기후 -> 질병 -> 서구 정착민 부재 -> 나쁜 제도'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 원인은 지리적 환경이다.
◇모두가 간과하는 요인 '산맥과 고도'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프리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까.
가장 핵심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더운 곳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더운 곳'에 살지 않는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기온을 보자. 최초의 글로벌 제국이었던 리스본이 나이로비보다 더 덥다. 나이로비 기온은 높지 않으며 연중 안정적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는 리스본보다 시원하고, 콜롬비아 보고타는 스페인 마드리드보다 춥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탈리아와 콜롬비아의 지형 및 인구 밀도 지도를 비교해 보자. 이탈리아는 모든 평야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반면 콜롬비아 사람들은 대부분 산, 특히 고원 지대에 산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통 고도가 1000m 오를 때마다 기온은 4~9도 하락한다. 해발 2600m에 있는 보고타는 해수면에 있는 바랑키야보다 연평균 기온이 14도나 낮다.
보고타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수십 년 만인 1538년 내륙 깊숙한 산맥에 세워졌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해안 평야의 질병과 싸우느라 고생했다. 수백 km를 이동해 고산지대로 올라갈 가치는 충분했다. 질병이 없고 토양도 비옥해 농업에 훨씬 유리했다. 콜롬비아 3대 도시인 보고타, 메데인, 칼리가 모두 산에 있는 이유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북서부 아틀라스 산맥, 나일강 유역,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인구가 몰려 있다. 전 세계 수도의 고도와 적도 거리를 보면 패턴이 명확하다. 적도 인구의 상당수가 산에 산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수도의 고도가 높다. 선진국 중 고도가 가장 높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해발 750m다. 반면 가난한 나라의 수도는 해발 1000m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고도가 높으면 습도도 낮아진다. 열대 저지대에서는 땀으로 체온을 식힐 수 없지만 산에서는 가능하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고산 지대에 산다. 이로 인한 결과는 무엇일까.
교통
산에 산다는 것은 이동할 때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항해 가능한 강이 없고 인프라 구축 비용은 비싸다. 결국 운송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무역
운송비 증가는 곧 무역 감소를 의미한다. 돈을 벌기 어렵고 부도 쌓이지 않는다. 이는 멕시코와 브라질 같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발칸화
산맥은 갈등을 낳는다. 이동 비용이 높아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계곡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지역 통합이 어렵고 타인에 대한 신뢰는 낮아진다. 이는 계곡, 지역,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진다. 중남미 카르텔 대부분은 산악 지대에 근거지를 둔다. 아프리카의 민족 분쟁 대부분도 산악 지대에서 일어난다.
◇결론
인류는 일 년 내내 기온이 안정적이고 온대 지역의 봄, 가을과 비슷한 아프리카 고원에서 진화했다. 적도 부근 저지대는 인간이 견디기에 너무 덥다. 몸이 과열돼 일할 수 없고, 땀으로 체온을 낮추기도 불가능하다. 농사짓기도 어렵다.
이를 피하려 적도 주변 사람들은 서늘한 산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쾌적한 기후를 얻은 대가는 컸다. 운송 비용이 치솟아 무역이 줄고 부를 쌓지 못했다. 산악 지형은 민족 다양성을 심화시켰고, 이는 갈등을 유발해 빈곤을 고착화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산맥이 가장 과소평가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더운 나라가 가난한 이유를 설명할 때 고도와 지형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두 가지 독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생산성이 낮고 질병이 득실대는 저지대에 남거나, 무역이 단절되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고산지대로 피하거나.
빈곤 퇴치에 크게 기여한 발명품 중 하나가 에어컨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지대에 속한 더운 나라들이 에어컨을 가동해 생산성을 높이고 질병을 줄이려 전력망 확충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다.
책임 전가 논쟁은 무의미하다. 산악 지형이 가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명확한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저지대는 에어컨 보급을 늘리고 질병 퇴치에 집중해야 한다. 고산 지대는 교통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토마스 푸에요는 실리콘밸리 기업인이자 작가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망치와 춤'이라는 글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 지리, 기술, 경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글을 쓴다.
로마인
james2
주성치개새
하리하리
멀던
랙왕
Skywalker21
afiguwl
코카콜라
술의눈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누워있고 싶음..
진짜 에어컨으로 달려가고 싶음
생산성 향상은 확실히 기계화 농업이 발달한 이유에나 된 거죠. 물론 이집트처럼 환경의 축복이 확실하면 문명을 일으키지만 적도는 그러기엔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