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 - 인간들이 배워야 할 ...]진료비·약값 모두 '0원'... 53년째 고갯길 오르는 쪽방촌 '슈바이처' [人터뷰…
◆'반세기 의료봉사' 고영초 요셉의원 원장
노숙인·쪽방촌 주민 등 무료 진료 이어와
인술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람의 마음'
1만 명 후원자·자원봉사자 나눔 이어가
편집자주고영초 요셉의원 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병원 원장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의료 봉사에 나서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
한국일보 '人터뷰'는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사연이 깊은 인사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잔잔한 휴먼 스토리를 전달합니다.
지난달 28일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한 사람 겨우 지날 좁고 가파른 계단에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볕 한 줄기 들지 않는 낡은 담벼락으론 소변 지린내와 찌든 술기운이 눌어붙어 있었다. 젊은 사람도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할 가파른 언덕을 고영초(73) 요셉의원 원장이 사뿐하게 올랐다.
낡은 진료 가방을 맨 그가 골목 안 어느 판잣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 원장은 소주병이 굴러다니는 좁은 방 안, 알코올에 의지해 하루를 버티는 지모(55)씨 팔에 혈압계를 둘렀다. “아직 혈압이 높네요. 당장 술을 끊으라고는 안 할게요. 다음에 올 때까지 일주일에 딱 한 병으로만 줄여봅시다.”
“아직 술 생각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원장님 덕에 예전보다 나아졌다”며 멋쩍어하는 지씨 손을 고 원장이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세상이 당신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온기이자 위로였다.
지난 4월 28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으로 방문진료에 나선 고영초(왼쪽) 요셉의원 원장이 주민조합 시설 앞에서 전공의 김완(오른쪽)씨, 자원봉사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민서 기자고 원장이 거리의 이웃을 상대로 의료 봉사에 나선 지 햇수로 53년째다. 의대 신입생 시절, 무거운 약 상자를 들고 달동네를 찾던 청년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노의사가 됐다. 반세기 넘게 그가 내밀어온 손길은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을 붙드는 단단한 버팀목이 됐다. 그가 ‘쪽방촌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유다.
진료비 0원, 가장 낮은 곳의 병원
고 원장이 땀방울을 훔치며 서울역 앞 요셉의원으로 돌아왔다. 1987년 고(故) 선우경식 원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빈민촌에 처음 세운 요셉의원은 지씨처럼 제도권 의료시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낮은 곳의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선 진찰비, 약값, 의료 자재비 등 모든 것이 무료다. 쪽방촌 주민과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자격이 말소된 행려자, 미등록 외국인 등 세상에서 외면받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의원 입구에 붙은 ‘건강보험 가입자는 다른 병원을 이용해달라’는 안내 문구는 그래서 '보험 미가입자를 환영한다'는 말로 읽힌다.
1997년 9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요셉의원 개원 10주년 행사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김수환(앞줄 오른쪽 두 번째) 추기경을 선우경식(앞줄 맨 오른쪽) 초대 요셉의원 원장이 안내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이날 축복미사를 집전했다. 요셉의원 제공고 원장은 이곳의 다섯 번째 원장이다. 상주 의사는 그가 유일하지만, 봉사의사 130여 명이 돌아가며 진료를 본다. 내과·외과·신경외과·정신과 등 진료과가 15개에 달하는, 웬만한 종합병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다. 환자도 매일 100명 이상,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간·위장 질환자가 주로 찾는다. 조현병,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환자도 흔하다.
고 원장은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 현장 진료에 나선다. 요셉의원이 신림동, 영등포 쪽방촌에 이어 서울역을 세 번째 터전으로 택한 것도 이들을 더 많이 품기 위해서다. 동자동 등 용산구 일대 쪽방촌 주민은 3,000여 명, 영등포보다 열 배나 많다.
“복지 제도가 좋아졌는데 이런 병원이 굳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다릅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은 일반 병원에 가길 꺼리고, 병원도 이들을 반기지 않는 서글픈 현실이죠.” 고 원장은 복지의 빈틈을 메우고 이들이 인간답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최후의, 가장 밑바닥의 안전망을 자처한다.
2007년 요셉의원 2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고영초(왼쪽) 원장과 선우경식(가운데) 초대 원장. 요셉의원 제공사제의 길 대신 택한 육신의 치유
처음부터 의사를 꿈꿨던 건 아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신부를 꿈꾸고, 사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영혼을 치유하는 사제와, 육신을 치유하는 의사의 소명이 닮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반고로 옮겨 의대에 진학했다.
1973년 본과부터는 청계천 철거민이 밀려난 경기 성남시 등을 다니며 의료봉사에 나섰다. “의료보험도 없었을 때였어요. 외진 마을이라 버스에서 내려 수술 기구가 든 무거운 진료 박스를 들고 걸으면서 손에 밧줄 자국이 남았지만, 그마저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봉사는 소명이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소명이 된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과 건국대병원 신경외과에 근무하면서 요셉의원과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문을 연 전진상의원, 이주노동자를 위한 라파엘클리닉을 찾아 환자를 돌봤다. 그가 청진기를 들고 맞이한 환자만 족히 3만 명이 넘는다.
고영초(오른쪽) 요셉의원 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요셉의원 진료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나민서 기자헌신했지만 후회한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 무릎이 아프다는 노숙인 환자 말에 ‘디스크겠거니’ 생각하고 약을 처방했다. 바지를 벗겨 근력과 감각, 반사신경을 확인해야 했는데, 옷에 대소변이 묻어 있었다. 한 달 뒤 찾아온 환자는 증상이 악화돼 있었다.
그를 깨운 건 미사에서 들은 성경 구절이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문장이 비수처럼 꽂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검진했더니 척수 종양이 발견됐다. 고 원장은 “그날 이후 어떤 환자든 작은 예수라고 여기며 정성을 다해 진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안타까운 순간도 많다. 무료 검진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르거나 스스로를 포기해 병을 키워온 환자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엔 말 못 할 응어리가 맺힌다.
반세기 버틴 원동력은 ‘마음’
대가도, 보상도 없이 수십 년간 인술을 펼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고 원장은 주저없이 ‘마음’이라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건 약보다 응원입니다.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눈빛이 달라져요. 저는 그냥 ‘우리가 당신 곁에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서 살아보자’는 마음을 전할 뿐이에요.”
서울 용산구 서울역 근처에 위치한 요셉의원 외관. '가난한 환자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선우경식 초대 원장의 말이 적혀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진심은 기적을 낳았다. 술에 절어 살던 이들이 다시 일어섰다. 무료 진료를 받은 이는 생계 급여를 아껴 모은 꼬깃꼬깃한 지폐를 병원 문 틈에 몰래 넣고 갔다. 따뜻한 마음은 또한 고 원장만의 것도 아니었다. 그를 따라 무료 봉사에 나선 동료 의사가 50명이 넘는다. ‘의사 낚아오는 어부’라는 별명은 그래서 생겼다. 안과의사인 고 원장의 아들도 동행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 당시에는 갈 곳 잃은 제자들이 함께 쪽방촌을 돌았다.
개원 초기 수십 명이던 요셉의원 후원자도 이제 1만 명을 넘어섰다. 자원봉사자도 600명을 웃돈다. 오랜 시간 그가 내밀어온 손길은 셀 수 없는 마음이 되어 돌아왔다. 고 원장은 국민추천포상(2012년)과 LG의인상(2021년),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상(2024년)을 받았다. 수상과 함께 받은 상금은 그간 봉사해온 여러 병원에 나눠 기부했다.
고 원장은 말한다. 봉사는 거창한 헌신이나 시혜가 아닌,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53년째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그가 환자들에게 찾아주고 싶은 건, 어쩌면 몸의 건강이 아닌 잃어버린 삶의 의지, 그리고 다시 살아갈 희망 그 자체일 것이다.
고영초(오른쪽) 요셉의원 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거주민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나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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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 하기 힘든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인데
그런걸 무료봉사로 해주시니 ..
캬...저 글만 봐도 설명이 다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