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커쇼와 구로다 히로키, 걸어온 길은 달랐으나 결말은 같았던 두 낭만의 사나이
2011년 9월 27일, 시즌 마지막 등판을 앞둔 구로다 히로키에게 한 투수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클레이튼 커쇼, 2011시즌 21승 5패 233.1이닝 248K ERA 2.28 fWAR 7.3을 기록하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이제 막 만 23세 선발 투수. 포스트시즌도 못 가는 팀 주제에 23살한테 233.1이닝을 쳐굴려놓고 갑자기 착한 척, 존나 관리해주는 척 어깨를 보호해야 한다며 233.1이닝이면 너무 많이 던졌다고 투구 금지령을 내린 다저스 구단은 커쇼를 만류한다. (그럼 ㅆㅂ 진작 정규시즌에 쳐빼주던가 캐치볼 한다고 잡도리 하는 게 아니라)
"괜찮다. 히로가 선발인데, 내가 캐치볼을 해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클레이튼 커쇼는 구로다의 마지막 등판 캐치볼 상대가 되어준다. 이 날은 구로다의 마지막 경기. 2008시즌, 3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불꽃이 있을 때 싸우러 가고 싶다"라고 말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구로다 히로키, 당초 다저스에게 4년 계약을 제의받았으나 '이 짓을 4년이나 하라고?'라고 생각한 그는 3년 353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다저스에 도착한 구로다는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28승 497이닝 ERA 3.6 fWAR 9.7이라는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다. 3년 계약이 끝난 후, 그는 보스턴과 양키스가 더 높은 금액을 제의했음에도 1년 1200만 달러라는 조건에 다저스에 잔류한다.
다저스에 잔류한 2011시즌, 구로다 히로키의 기량은 여전했다. 언제 꺾여도 이상하지 않는 36세 시즌, 승운이 따르지 않으며 16패를 당하긴 했지만 2011시즌 13승 16패 202이닝 ERA 3.07 fWAR 2.9 bWAR 3.4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구로다 말고도 사이영상 투수 클레이튼 커쇼, MVP급 활약을 보여준 맷 캠프를 들고 있었던 다저스는 이 선수들의 활약에도 82승 79패, 5할을 겨우 넘기는 승률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열악한 팀 사정에 고연봉자였던 구로다도 시즌 중반 트레이드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국 리툴링이 필요했던 다저스는 사실상 구로다를 잡지 않기로 결정했고, 커리어 황혼기를 향해 달려가던 구로다도 플레이오프 팀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며 2011년 9월 27일의 경기는 구로다의 다저스 소속 마지막 경기가 될 확률이 높았다.
시간을 다시 구로다가 다저스에 도착한 2008년으로 돌려보자. 다저스는 이 시즌 1라운드 투수 클레이튼 커쇼를 콜업했다. 33세 시즌을 맞이하는 선수와 20세 시즌을 맞이하는 선수, 나이 차이는 컸지만 빅리그 데뷔 시즌을 가지는 신인이라는 것은 똑같았고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구로다와 커쇼는 서로의 캐치볼 상대가 된다. 단순히 훈련 때 캐치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야구장 밖에서도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사적으로도 가까워졌다. 커쇼는 산전수전 다 겪은 구로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노하우와 멘탈 관리, 자기 관리를 배웠다.
"히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년에도 남아달라고"
구로다와 각별한 사이가 된 커쇼는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투수가 된 이후에도 구로다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2011시즌 마지막 미팅에서 구로다에게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커쇼에게 남아달라는 요청을 들은 구로다는 클럽 하우스에 남아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져있다. 후에 구로다는 "커쇼와의 이별은 너무 슬펐다"라고 말하며 커쇼와 자신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나의 소속팀은 항상 언더독이었다. 내가 뛴다면 얼마나 뛰겠나. 한번이라도 플레이오프,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뛰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2011시즌이 끝나고 구로다는 다저스를 떠나 양키스로 이적하며 커쇼와 구로다는 헤어지게 된다.
낭만 투수 구로다 히로키
우리가 오늘날 기억하는 건 낭만의 에이스, 메이저리거 구로다지만 구로다가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것이 그의 고시엔 출전 경력. 그는 고교 시절 고시엔에 한번도 출전하지 못 했다. 대부분의 경기를 패전 처리로 등판했으며 그와 함께 했던 야구부 주장과 코치도 그를 기억하지 못 했을 정도로 존재감 없는 무명 선수 구로다. 다행히 대학 시절부터 구속이 올라왔고 가난했던 구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역지명'해서 입단했다. 카프를 선택한 이유도 낭만적인데, 사실상 무명 선수였던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줬기 때문이었다.
카프에 입단한 구로다는 첫 경기에서 완투승을 기록하는 미친 임팩트를 보여주긴 했지만 이후 활약을 이어가지 못 했다. 1997시즌 ERA 4.4에 WAR 0.1, 삼진과 볼넷이 거의 1:1일 정도로 제구도 좋지 못 했다. 4년차인 2000시즌까지 구로다는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았으나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 했다. 2001시즌, 13완투 190이닝 소화와 함께 자신의 포텐을 터뜨린 구로다 히로키는 2005시즌 11완투 212.1이닝 ERA 3.17, 2006시즌 189.1이닝 ERA 1.85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를 보낸다. 2006시즌이 끝난 뒤, 구로다는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라고 말하며 FA 자격을 행사하려고 했고, 거액의 제안을 한 요미우리에 비해 카프의 제안은 택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적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 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2006년 10월 16일, 구로다의 고별전. 에이스를 떠나보내는 카프 팬들이 구로다에게 보낸 메세지. 팬들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구로다는 "내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카프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면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뒤 요미우리의 30억엔 제안을 뿌리치고 30억엔에 턱없이 부족한 12억엔이라는 금액에 카프에 남았다. 대신 메이저리그 진출 시 파기를 조건으로. 카프에 남은 구로다는 2007시즌 예년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 33살의 나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로다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내 안에 불꽃이 있을 때 싸우러 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고 구로다는 세계 최고의 리그로 떠났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저스와 계약한 구로다는 4년 동안 무난한 성적을 거둔 후 다저스를 떠났다. 자신의 꿈이었던 플레이오프와 월드시리즈를 위해 양키스와 1년 1000만 달러라는 금액에 계약한 구로다는 37세의 나이에도 여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33경기 16승 11패 219.2이닝 ERA 3.32 fWAR 3.4 bWAR 5.0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양키스에서 포스트시즌 데뷔를 하기도 했고. 2012시즌에 이어 2013시즌에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201.1이닝 ERA 3.31 fWAR 3.3 bWAR 4.2. 나이가 많긴 해도 워낙 퍼포먼스 자체가 꾸준했고 워낙 성실해 현장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다년 계약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늘 단년 계약을 고집했다.
"나는 더 이상 내년을 위해 야구를 하는 나이는 아니다. 내가 지금 왜 야구를 하는지 생각하면서 늘 완벽하게 태우고 싶다. 다년 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지나친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 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왜 다년 계약을 하지 않고 단년 계약을 고수하냐는 질문에 구로다의 답. 구로다는 매년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다년 계약을 할 수 있음에도 단년만 고집한 이유를 매년 증명해왔고 기대치에 보답하지 못 했을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 했을 때의 두려움을 항상 짊어지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2014시즌에도 11승 9패 199이닝 ERA 3.71 fWAR 3.1 bWAR 2.1이라는 성적을 기록, 성적이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한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줬다. 또 다시 양키스와의 단년 계약이 끝난 구로다 히로키, 나이가 많긴 하지만 꾸준했던 이닝 소화와 단년 계약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까지... 단년 계약으로 뽑아먹기 딱 좋은 구로다에게 많은 팀들이 제의했고 2000만 달러에 근접한 연봉을 제의하는데....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카프 덕택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보답하고 싶다. 일본에 돌아간다면 카프밖에 없다. 돌아간다면 힘이 있을 때 돌아가고 싶다."
-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카프를 떠날 때 구로다 히로키
구로다는 2000만 달러의 연봉을 뿌리치고 이 약속을 지킨다. 1년 4억엔, 메이저리그 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카프에 돌아온 구로다는 2년 동안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고 비록 일본시리즈 우승은 이루지 못 했지만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커쇼는 모두가 알 듯이 구로다와 정말 다른 길을 걸었다.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도 못 나갈 정도로 무명 선수였던 구로다와 달리 커쇼는 고교 시절부터 야구를 대단히 잘했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7번으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는다. 그의 프로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등장부터 마이너리그를 씹어먹은 클레이튼 커쇼는 데뷔 3년차인 2008시즌부터 선발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막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구로다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고. 구로다와 함께한 4년, 그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그는 2011년 트리플크라운과 함께 사이영상 수상에 성공한다. 그의 나이 23살 때의 일이었다.
구로다가 떠난 뒤에도 커쇼는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였다. 2012년 사이영 2위, 2013년과 2014년은 1점대 평균자책점과 함께 백투백 사이영을 차지했고 2014년엔 MVP까지 수상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는 다저스와 7년 2억 1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며 마의 연평균 3000만 달러의 계약을 깨기도 했다. 2015시즌, 시즌 300K를 달성하며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던 클레이튼 커쇼. 고작 26살에 사이영 3개를 휩쓸었던 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많은 이닝을 던지자 고작 30살부터 포심 구속의 하락이 시작됐다.
2020년대 초반, 더 이상 지구 1선발 클레이튼 커쇼는 없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90마일까지 내려왔고 사실상 슬라이더와 커브로 살아남았다. 33번 선발 등판해 230이닝을 먹었던 괴물 같은 내구성도 이제는 커쇼를 상징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허리 부상으로 2019년을 끝으로 규정이닝 소화는 없었고 매시즌 120~130이닝 소화에도 그쳤다. 이런 부진과 함께 매 시즌 고향 텍사스로의 이적설도 돌았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매년 1년 계약 다저스 잔류였다.
아무리 기량이 떨어져도 커쇼는 커쇼였다. 120~130이닝밖에 못 먹어도 WAR 3~4는 착실히 뽑아줬다. 다년 계약을 원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다저스도 커쇼에게 다년 계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커쇼의 선택은 매번 1년 계약 잔류였다. 왜 다년 계약을 뿌리치고 단년 계약을 고집하냐는 질문에는, '다년 계약을 맺었다가 덜컥 부상을 입으면 구단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팀에 해악을 끼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신인 시절 캐치볼을 함께 하던 한 일본 투수가 했던 말과 거의 일치한다. 17년 전 자신과 함께 캐치볼을 하던 그 선배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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