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빠빠, 쏜살같은 세월을 버텨낸 영웅에게
어릴 적 신문이 오면 TV 편성표부터 확인하고
줄줄 외우며 오직 그랜다이저 방송 시간만을 학수고대했음.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막 달려가 책가방 집어던져 놓고
빠빠빠 주제가를 따라 부르던 그때 당시의 장소와 방 안 분위기,
냄새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남.
친구 집에서 놀면서 종이 달력을 찢어 딱지도 접고
개구리도 접고 원탁의 기사 투구도 접으며 놀다가,
저녁때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동그란 밥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내가 그랜다이저가 된 양
온 집안을 누비던 국민학생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음.
인근 들녘으로 소풍을 갈 때면 전교생 선후배들과 목청껏 이 노래를 불렀고,
들녘에서 일하시던 부모님들이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음.
멜로디와 가사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
국민학교 장기자랑이나 운동회 때면 항상 응원가로 불렀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태양을 향해라 용기를 마셔라를 열창하던 내가 떠오름.
한창 연애할 때는 그앤다잊어 그앤다잊어 그 앤 다 잊어라며 개사해 부르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질렀던 추억도 가득함.
왼발 왼발 빠 빠빠빰 빱 빱 바 바 소리에 맞춰 군가처럼 부르던 이 노래가
이 나이에도 머릿속에 아주 각인이 돼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
덕분에 잠시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음.
어른이 되어서는 각 그랜저 차 소유주들이 자기 차를
그랜다이저라고 장난스레 부르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함.
그렇게 우주와 하나뿐인 인간의 지구를 위해 생명을 건다던 가사에 감동하던
어렸던 내가 벌써 50이 넘었다는 사실이 참 무상함.
이제는 노안이 와서 가까운 글씨도 잘 안 보이고
지구는커녕 내 한 몸 지키기도 벅찬 현실이 되었음.
옛 어른들이 지난 시간은 어제 같고
쏜살같이 간다고 말씀하실 때는 한귀로 흘려들었는데,
역시 앞서 살아간 분들의 경험담은 세월이 흐를수록 진솔하게 가슴에 스며듦.
한때는 세상을 다 가질 것 같던 당당한 X세대이자
마음은 아직 어린 시절 80년대를 달리고 있는데
벌써 중년이라니 인생이 순식간이라 허무하기도 함.
다음 43년 뒤에는 우리 모두 이 지구상에 없겠다는 생각에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참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고 느낌.
지금은 50 넘어 오직 내 소중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지켜내겠다는
눈물겨운 헌신과 책임감이 있었기에 항상 즐겁게 살려 노력하고 있음.
비록 청춘과 몸은 예전 같지 않아 한 걸음이 조심스러울지라도
가족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매일 아침 일터로 나섰던
그 고된 발걸음은 그 어떤 영웅의 비행보다 위대했음.
치열하게 가족을 위해 내 전부를 쏟아부으며 살아남은 지금은
그 시절 저녁때가 되면 마당까지 냄새가 퍼지던
엄마가 끓여주신 콩나물 김치 두루치기 꿀꿀이죽이 유독 간절하게 생각남.
그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벌써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몇몇 친구들의 얼굴도 너무 보고 싶음.
이제는 거창했던 지구 방위나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남 눈치 볼 것 없이 내 본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오롯이
나만의 삶만을 걱정하며 평온하고 건강하게 늙어가고 싶음.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며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움.
결론적으로 이 노래는 서글픈 현실을 위로하는 유머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묵묵히 청춘을 바쳐 희생하고 모진 세월을 버텨낸 50대의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같은 시대를 버텨온 안녕한 친구들에게
이제는 가장 나답고 건강한 영웅으로 살아가자고 뜨겁게 박수를 보내는
위대한 인생의 찬가이자 헌사임. 모두 다들 건강하기를 바람.
군가 일발 장전한다! 군가는 그랜다이져!
왼발 왼발 핫 둘 셋 넷! 빠 빠빠빰~! 빱 빱~빠~바 ~!
Comments
동암
05.17 02:25

호이짜요
05.17 10:16
Roen
07.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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