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이끼>: '나만 아니면 돼' 배설된 양심
[감상] <이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침묵의 카르텔, 그리고 배설된 양심
영화 <이끼> 속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벽을 쌓고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의 추악한 비밀을 덮어주며 "우리만 아니면 돼,
우리끼리만 평화로우면 돼"라는 집단적 신념으로 외지인의 상식을 압살한다.
이 서늘한 폐쇄성은 현대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반려동물 문화'라는 성역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1. 성역이 된 집단 이기주의: "누가 감히 쓴소리를 하는가"
1,500만 반려 시대. 이제 반려동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영화 속 마을 주민들이 천용덕 목사를 중심으로 뭉쳐 과오를 정당화하듯,
오늘날 일부 반려인들은 '가족'이라는 감성적인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불편을 묵살한다.
"동물이 그럴 수도 있지", "나만 아니면 돼"라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권력이 되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상식적인 목소리조차 '혐오'라는 이름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2. 배설물의 패러독스: 환경보호가 외치는 '오물 밭의 평화'
여기 지독한 역설이 있다.
전 세계 환경보호를 외치며 공해 방지에 앞장서는 이가,
정작 자신의 반려동물이 길거리에 지린 오물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풍경이다.
인간이 길거리에서 용변을 보면 경범죄로 처벌받지만,
'가족'인 동물의 배설물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용인된다.
내 집 안의 공기는 깨끗해야 하지만,
내 집 밖 동네 골목은 동물의 똥오줌으로 범벅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이 기괴한 분리 사고. 이것은 환경보호가 아니라,
내 울타리 밖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청결한 파괴'일 뿐이다.
3. 발상의 전환: 당신의 손주가 부빈 곳이 '그곳'이라면
이 납득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를 한순간에 깨뜨릴 방법은 오직 하나,
'내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의 손주가 뛰어놀다 넘어졌는데,
그 얼굴이 부딪힌 곳이 방금 전 당신이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하고 지나친
남의 집 개가 지린 오물 웅덩이라 가정해보자.
사랑스러운 자식의 얼굴이 동물의 분변으로 범벅이 되는 그 찰나,
당신이 믿어왔던 '반려 문화의 관용'은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결국 '나만 아니면 돼'라는 주문은,
내 자식의 얼굴에 오물을 묻히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마무리하며:
영화 <이끼>의 결말에서 진실이 드러나듯,
우리가 외면해온 오물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켜켜이 쌓여
'이끼'처럼 우리 삶을 잠식한다.
반려동물에게 기저귀를 채워서라도
타인의 공간을 존중하겠다는 그 사소한 책임감이 결여된 문화는,
결국 집단 이기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괴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제 '반려'라는 따뜻한 단어 뒤에 숨어 배설해온 이기심을 거두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생명이 타인에게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우물 안 개구리의 신념을 깨고 '책임'이라는 진짜 사랑을 시작해야 할 때다.
한 줄 평: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배설한 이기주의, 당신의 손주가 그 오물 위에서 넘어질 때까지는 결코 깨닫지 못할 독선(獨善)."
tomm
호이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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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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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에는달이흐른다1234567890
고봉선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