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도연맹 사건
6.25전쟁 초기 울산 지역에서 발생한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전향한 좌익 인물들에 대한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국민보도연맹 울산지부는 1949년 12월 9일에 결성되었다.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전향자들의 단체임을 표방하였지만 단체의 조직과 운영은 철저히 이승만 정권이 주도하였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단순 가담자이거나 좌익 혐의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일선 행정 기관에 인원수를 할당하여 회유와 협박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국민보도연맹원을 가입시켰다.
6.25전쟁 발발 당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었던 울산보도연맹원과 좌익 혐의자를 포함한 예비 검속자들은 울산경찰서 및 각 지서에 연행되거나 보도연맹원 회의·훈련 등의 소집 통보를 받고 출두하였다. 울산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은 울산경찰서 유치장, 연무장, 차고[창고] 등에 구금되었다. 이전의 좌익 활동에 따라 갑·을·병[또는 A·B·C] 등급으로 분류되어 갑·을 등급은 유치장에, 병 등급은 연무장과 차고[창고]에 각각 구금되었다. 구금 후 과거 경력에 대해 조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구타를 통한 폭력이 수시로 자행되었다. 1950년 8월 5일부터 26일까지 울산경찰서 사찰계 경찰과 울산지구 CIC 대원들은 10여 차례에 걸쳐 예비 검속자들의 손목을 묶은 채 트럭에 태워 울산군 온양면 운화리 대운산 골짜기와 울산군 청량면 삼정리 반정고개로 이송하여 최소 1명, 최대 212명까지 집단 총살하였다. 울산 지역의 국민보도연맹 관련 희생 인원은 최소 870여 명으로 알려졌다.
6.25전쟁 당시 울산 지역 보도연맹원은 최소 1,561명이었고 사건 관련 희생자는 최소 870명 이상이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신원을 확인한 사람은 407명이다. 확인자 중 95.5%인 389명은 20~40대의 청·장년 남성이었으며, 10대가 9명, 여성도 3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던 주민들로, 좌익 활동과 무관한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군이 관할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과 예비 검속자들을 불법 처형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이다.
울산에서 발생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전시 비상사태였지만 북한 인민군의 미점령지인 울산 지역에서 대규모의 민간인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장기간 예비 구금되어 학살당한 사건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비무장 민간인들은 법적 절차도 없이 집단 학살 당하였고, 유족들은 이후 죄인 취급을 받았다. 2008년 1월 24일 노무현 정부는 국가 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행해진 사건임을 인정하고,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소송에 따른 국가 배상 절차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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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 보도연맹은 이승만이 행정기관들에게 할당을 내려 공무원들이 굶주린 농민들에게 쌀 한줌을 주고 가입시킨후 집단 학살한 사건.
출처 : 울산광역시 소속 울산역사문화대전 ( https://ul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ulsan&dataType=01&contents_id=GC80001132 )
Comments
수라
07.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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