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도 있었지..ㅋㅋㅋㅋㅋㅋㅋ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월 27일 새벽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대전, 대구, 부산 등으로 피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 시민에게는 "서울을 사수할 테니 안심하라"는 녹음 방송을 남겨둔 채, 한강 인도교를 조기 폭파해 피난길을 막아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은 남한 정부·군경과 북한군 모두에 의해 발생했으며, 이는 냉전 구도 속에서 반공주의와 사회주의 확산 억제라는 정치적 목적과 맞물려 있었다. 만약 이런 강압적 학살이 없었다면 한국은 민주주의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당시 국제정세와 분단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주의 체제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았다. (아마 반대 였으면 지금 북한처럼 되었겠지)
역사적 사실
제주 4.3 사건 (1948~1954): 남로당 무장봉기와 진압 과정에서 약 3만 명의 민간인 희생.
여수·순천 사건 (1948): 군인들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 희생.
국민보도연맹 학살 (1950): 좌익 전향자 단체 회원 수십만 명 중 약 20만 명이 전쟁 초기 학살됨.
형무소 학살 (1950): 대전, 청주, 대구 등 전국 교도소에서 수천 명의 수감자가 처형됨.
거창 사건 (1951): 국군에 의해 민간인 700여 명 학살.
이 사건들은 남한 정부·군경의 반공 정책과 북한군·좌익 세력의 보복 학살이 동시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은 냉전 구도 속 미국의 영향력과 반공 정책 덕분이었다. 학살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더 빨리 정착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세력이 강해져 한반도 전체가 북한식 체제로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국제정세(미국 vs 소련)가 한국의 체제 선택을 결정한 핵심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시작은 공산당이 무장봉기 학살로 시작한거인데, 단 한명의 피해도 없이 진압하는게 가능이나 한거임?
지금 민주당 세력의 근간이 저 무장봉기로 죄없는 시민을 학살한 공산당이기 때문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은 존나 크게 확대해서 역사왜곡을 한게 팩트임.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월 27일 새벽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대전, 대구, 부산 등으로 피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 시민에게는 "서울을 사수할 테니 안심하라"는 녹음 방송을 남겨둔 채, 한강 인도교를 조기 폭파해 피난길을 막아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웅 이승만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도 빨갱이새끼로 도봬됫겠찌 ^^
자기는 도망가고 다리 폭파.. 얼마나 개새끼냐
자료: 1950년 6월 27일 대전에서 방송된 이승만 대통령 라디오 연설 녹취록
내용: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에게 전보를 보냈음을 언급, 미국의 군사적 원조가 진행 중임을 알림
출처: CIA 해외방송정보국(FBIS) 녹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보관
2. 대전일보 기사 (2023년 6월 25일)
사실 확인: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월 27일 새벽 4시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출발
경로: 대전으로 가려 했으나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이동
대전 도착: 오후 4시, 충남도지사 관사에 머물며 임시수도 체제 시작
방송: 같은 날 저녁 9시, 대전에서 전국에 특별방송 실시
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대한민국사 제18권)
내용: 1950년 6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전으로 정부 이전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고
맥아더에게 요청: 전투기와 포 지원을 요청한 기록 존재
이승만은 본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얘기 안한게 비판할 일이지 이미 서울 외곽까지 쳐들어온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긴 함
잘한점도 잇고 못한점도 잇고.
근데 얘아니었으면 우리도 빨갱이로 태어났을거임 ㅠ
그런 너한테 유리한 가정을 왜 하는 거지?
왜 빨갱이로 태어났을꺼라는 가정을 하는 거지? 다리를 꼭 폭파해야 맥아더가 상륙작전을 할 수 있데? 연관성 일도 없는 걸 가지고.. 지 유리한 가정만.. 에효 한심한새끼
말빨 딸리면 좃 물고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신새끼 ㅋ
역사적 사실
제주 4.3 사건 (1948~1954): 남로당 무장봉기와 진압 과정에서 약 3만 명의 민간인 희생.
여수·순천 사건 (1948): 군인들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 희생.
국민보도연맹 학살 (1950): 좌익 전향자 단체 회원 수십만 명 중 약 20만 명이 전쟁 초기 학살됨.
형무소 학살 (1950): 대전, 청주, 대구 등 전국 교도소에서 수천 명의 수감자가 처형됨.
거창 사건 (1951): 국군에 의해 민간인 700여 명 학살.
이 사건들은 남한 정부·군경의 반공 정책과 북한군·좌익 세력의 보복 학살이 동시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은 냉전 구도 속 미국의 영향력과 반공 정책 덕분이었다. 학살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더 빨리 정착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세력이 강해져 한반도 전체가 북한식 체제로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국제정세(미국 vs 소련)가 한국의 체제 선택을 결정한 핵심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정도로 이해 하면 되겠습니다.
지금 민주당 세력의 근간이 저 무장봉기로 죄없는 시민을 학살한 공산당이기 때문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은 존나 크게 확대해서 역사왜곡을 한게 팩트임.
그냥 미국하고 중국 소련사이에 껴서 적화통일 안된거지.
병신소리를 하고 쳐 자빠졌네.
누구던 남한쪽에서 빨갱이 정부세울려고 했으면 미국한테 암살당했을거다.
먼 병신소릴 쳐 하고 자빠졌네.
김구선생까지 빨갱이로 몰아갈려고 하네.
홍범도도 그렇게 날리더니.
제대로된 독립 운동가들은 아예 싹을 다 날리려고 드는구나.
못배워 쳐먹은 새끼들.
뉴라이트 교육을 쳐 배웠나.
김구 반공론자였음.
모르면 배워요.
방북후에 공산체제?
역사를 제대로 배워라.
모르면 물어라도 보던가.
널린게 그 방북후 행적이니까.
김일성 개새 ㄲㅣ 김정일 돼지새끼 김정은 개돼지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