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깨부수기]이승만은 부정선거로 당선됐나?
부정선거가 있었던건 부통령 선거 였습니다.
당시 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단독출마라 대통령이 확정이었습니다.
1960년 제4대 정부통령선거 (3.15)
3.15 선거는 정부통령 선거였지만 투표 한달 전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에서 서거하며 대통령은 이승만이 단독 출마한 상황이라 사실상 부통령에 대한 부정선거였다. 이승만의 국정장악력이 느슨해서 그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있다.
3.15 부정선거는 당과 내각 그리고 경무대 비서실의 합작이었다. 당시 연로한 이승만이 무슨 일을 당하면 부통령이 권한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서 부정선거를 했던 것이다.
당시 선거를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내무장관 최인규는 이기붕이 이끄는 자유당과 함께 1959년부터 투표계획을 세운다. 여기에는 4할사전투표, 공개투표전략,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수법이 모두 있었다.
관권이 개입해 구비서류 미비를 이유를 대거나, 서류 강탈등의 수법으로 야당의 후보 등록 자체를 방해하는 방식도 동원되었다.
야당유세장을 텅텅 비우게 할 요량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일요일에도 등교하게 했다. 학생들로 인해 2.28대구학생시위를 필두로 대전-수원-서울-원주 등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투표당일 마산시위 폭발로 연결되었다. 그때 경찰의 발포로 아홉명이 사망했는데, 그 한명이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이다. 한달 여 뒤 4.11일 마산앞마다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부정선거 비판이 이승만정부 규탄으로 발전했다. 고려대 등 서울시내 대학 거의 전체가 한꺼번에 시위를 벌인 결정적인 분기점이 바로 4.19다. 급속한 여론 악화와 함께 결국 대통령의 하야 성명(4.26)라는 충격적 결과를 빚어냈다.
그러나 이승만은 부정선거와 관련된 소요하태의 전모와 원인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점은 최고 통지자로서의 결격사유로 지목되지만, 거꾸로 부정선거에서 그가 깊숙이 개입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증거로 김주열의 시신 발견 그 다음날 열렸던 국무회의 속기록을 훑어볼 필요가 있다.
이건 두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당시 연로했던 그가 효과적으로 국정 전반을 장악하지 못했을 가능성
둘째, 이기붕이 이끄는 자유당이 선거부정을 지휘-연출했던 총본산
부정선거는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팩트는 정확히 알아야 악랄한 좌빨들한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멸공!
인동초
볼텍스
똥또롱
폭풍처럼
공룡이나타낫다
PkarJH
개꿀페페
logi
되면한다


학살은 어느 경우에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으나...
한반도의 비극적 사건 가져온 근본 원인은 좌익·공산세력에게 있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공산주의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로,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말부터 9월경까지 수많은 연맹원이 군경에 의해 살해됐다. (사망자 수는 제각각이다. 확인된 희생자만 5,000 명이고, 증언에 근거해서 최대 20만 명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는가 하면[위키백과], 수만 명 ~ 20만 명이라는 두루뭉수리한 자료도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국민방위군 사건’과 함께 이승만 정부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로 꼽힌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왜 발생하게 됐을까? 그 원인을 찾으려면 해방 정국 한반도 상황부터 살펴야 한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건국에 이르기까지 남한 내에서 좌익의 책동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대구 10월 폭동’,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 사건’이 있다. 좌익 세력들은 남한 내 군경, 반공주의자, 기독교인 등을 비롯해 무고한 시민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이에 정부는 좌익 세력의 책동에 강경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좌익 책동에 대한 트라우마,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원인
6·25 전쟁 발발 직후, 북한 인민군에게 함락된 지역에서 일부 보도연맹원들이 군경과 우익 인사 및 그들의 가족을 인민군에게 밀고하고 체포 및 살해에 협조하는 등 이적 행위를 저질렀다. 좌익 책동의 트라우마에 걸려 있던 한국 정부는 보도연맹원에 대한 처리를 명령했고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연맹원들이 학살됐다.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좌익 세력들은 남한 내에서 어떤 책동을 일으켰던 것일까?
1946년 10월에서 12월 중순 사이 대구에서 좌익·용공 분자들의 대규모 무장 폭동 사건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대구 10월 폭동.김용삼 기자가 공개한 당시 기록을 보면 좌익 세력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좌익 세력들은 경찰관의 사지 및 성기를 절단하고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0월 2일 밤 미군순찰대가 달성공원에서 7구의 경찰관 시체를 발견했는데, 두 명은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으나 사지가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이 없었고, 일부 경찰관은 거세를 당했다. 폭도들은 경찰의 얼굴과 신체를 칼과 도끼로 난자하여 살해했고, 손을 등 뒤로 묶고 피를 흘려 쓰러질 때까지 날카로운 돌을 던졌으며, 큰 돌을 머리에 짓이기는 방법으로 살해했다.>
‘붉은 대학살’의 저자 송효순이 공개한 대구 폭동 세력들의 학살 수법은 잔인무도하다 못해 변태적이다. 부녀자들의 옷을 벗겨 찢어 죽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를 찔러 죽였다.
<▲총살 ▲죽창과 도검으로 마구 찌르기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생화장하기 ▲곡괭이, 쇠망치, 낫, 몽둥이 등 농기구를 사용해 타살 또는 생매장 ▲양민을 학살하기 전이나 후에 새끼로 목을 옭아 자동차에 매단 후 거리로 끌고 다니기 ▲나무에 매달아 때려죽이기 ▲생사람의 몸에 큰 돌을 달아 물에 던져 수장(水葬) ▲부녀자들의 옷을 벗겨 사지를 찢거나 잘라 죽이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를 총검과 죽창으로 마구 찌르기 ▲죽은 사람의 얼굴에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시체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들기>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기록도 섬뜩하다. 좌익 폭도들은 임산부의 배를 갈랐고 여성을 집단 윤간한 뒤 젖가슴, 성기 등을 도려내 죽였다.
<1948년 4월 18일 북제주군 조천읍에서 빨치산들이 육순이 넘은 경찰관들의 부모를 목 졸라 죽인 후 사지를 절단했고, 임신 6개월이 된 대동청년단 지부장의 형수를 때려죽였다. 4월 20일에는 임신한 경찰관 부인의 배를 갈라 죽였고, 이틀 후인 4월 22일에는 모슬포에서 경찰관의 아버지를 총살한 후 수족 절단, 임신 7개월 된 경찰관의 누이를 산 채로 생매장했다.5월 19일에는 제주읍 도두리에서 마을 부녀자 11명을 체포하여 눈오름이라는 삼림지대로 끌고 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빨치산 50여 명이 윤간한 다음 총검과 죽창, 일본도 등으로 부녀자의 젖가슴과 배, 음부, 볼기 등을 찔러 숨이 넘어가기 전에 생매장을 했다.>
남로당 소속 좌익 세력들에 의해 일어난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도내 400여 마을 중 259개 부락이 전소되고 1만 2,250호의 가옥이 불탔으며, 12개 면사무소 중 5개, 12개 경찰관서, 학교 34개소, 우체국 1개소가 소실됐다. 섬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 3만여 명 이상이 희생되고 이재민 10만여 명이 발생하게 된다.
1948년 10월 19일엔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발생한다.국군 제14연대 중 1개 대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해 여수항에 집결해 있던 중 부대 내에 침투해 있던 남로당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여수·순천 일대를 장악한다.이들은 먼저 여수를 장악한 뒤 순천으로 이동해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반란군들은 대중을 선동해 폭동을 부추겼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풀려나온 좌익분자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민가를 돌아다니며 약탈, 파괴, 방화 행위를 벌였다. 당시 순천에서 반란군에게 학살당한 양민이 1,134명, 행방불명자가 818명이었다고 한다.
여수·순천 반란사건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당시 제정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남한 내 좌익·용공 세력의 책동을 막아내게 된다.
전쟁에서 일어난 비극적 현상들
분명한 것은 전쟁이란 이렇게 비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위가 알게 모르게 집단적으로 때로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게 전쟁이다. 이기기 위해 인간은 단순한 소모품이 되는게 전쟁이다.
인민군은 남한 점령지에서 청소년들을 인민의용군이란 이름으로 강제 징발하여 전력을 보충했고, 후퇴하지 못하도록 발목에 쇠사슬을 매어놓기도 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인민의용군으로 참가한 인원은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역자들도 마찬가지다. 6·25 당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던 북한군 10만 명을 위한 보급품 운송에 동원된 남한 주민들은 한 사람 당 보급품 20kg씩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루 20km를 걸어서 최전선으로 날랐다고 한다.(이런 군 보급품 운송 부역자들은 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황이 역전되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청소년들이나 군 보급품을 날랐던 부역자들은 다시 보복의 대상이 되는게 전쟁이다. 그런 식의 보복이 반복되면서 6·25 기간 중 수많은 마을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학살이 전개된 양상은 대개 패턴화되어 있었다. 인민군에 밀려 급히 퇴각하는 군경이 좌익들을 학살하고, 피해를 입은 집안에서는 인민군이 들어오면 다시 마을의 우익 인사를 보복 학살하고, 다시 국군이 들어오면 또 다시 좌익을 보복 학살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어느 마을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1년에 두어 차례 여러 집안이 같은 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날만 되면 마을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고 한다.
북한만 인민의용군을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전황이 워낙 급하다보니 남한의 징병도 마구잡이 식이었다. 피난행렬을 세워 놓고 젊은이들을 색출하여 끌고 가고, 마을 사람들을 학교 운동장에 집합시켜 놓고 끌고 가고, 학교 정문에 트럭을 세워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차곡차곡 싣고 간 경우도 있었다.
사건에 대한 올바른 평가
학살은 어느 경우에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발생한 다시는 있어선 안 될 비극이다. 그러나 그 발단과 전개과정에 이승만이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승만이 이런 사건을 명령할 이유도 없다. 모두 당시 국회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므로 그건 분명하다.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좌익·용공 세력은 남한 내에서 잔인무도한 학살극을 벌였다. 좌익 세력에 의해 가족·친지를 무참히 살육 당한 이들은 울분했고 복수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좌익 세력의 책동에 대한 국민들의 과격한 반작용이었고, 그로 인해 무고한 희생 또한 많이 나왔다. 이와 함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방아쇠가 되었던 6·25전쟁을 일으킨 자는 북한의 김일성이다. 김일성이 박헌영과 함께 남한 내 좌익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6·25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적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국가가 다시 소멸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는 당시의 시대상황, 그리고 국가 전체가 악취가 진동하는 가난과 부패에 찌들어 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이승만의 잘못이라고 지적되는 것들의 대부분이 근본적으로는 바로 김일성·스탈린·모택동과 같은 20세기 3대 악당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
서북청년단은 아십니까?
그것도 뭐 빨갱이라고 하시게요? 아이고 참.
내가 얼마나 걱정해는데.....ㅠㅠ
티깦에서 할배 걱정해주고 힐링해주는건 나뿐인거 알지...
https://tcafes.com/bbs/board.php?bo_table=C1010&wr_id=16927
"시진핑 개새끼 해봐 ~~ 공산당 싫어요 해봐 ~~" 이 질문해서 부케 검증받자 ~~
부정선거 이승만
전직대통령 깜빵 보내기 달인들- 뽑은놈들 전부 사형이나 감옥행
이쯤되면 2벌레지
아따~ 거시기 찢죄명이 후장이 마르고 닳도록 핥아부러주는 대깨찢 화짱조 틀딱견 개새끼가 찢죄명이가 던져주는 돼지사료나 겨우 받아 쳐먹으면서 비루한 인생이나 살고 있으믄서 여기와서 개지랄발광을 하고 처좌파져부러~ ㅋㅋㅋㅋ
계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 통근버스 납치해서 가둔 사건 유명한데...
https://theme.archives.go.kr/next/daily/viewMain.do?selectDay=20140526
깡패 불러서 중국 공산단처럼 비밀선거 무시하고 일어서서 선거한 것도 뭐.. 유명하고...사사오입도 유명한데...
https://youtu.be/D-0aoXt4UfI
위 흐름으로 봐도 3.15부정선거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이승만이 몰랐다고 해서.. 아 몰랐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죠..
2. 이송만때 북한 공산당 쳐들어옴 / 박정이때 와이프 간첩한테 사살당함 / 박정이도 지 부하한테 배신당하고 사살당함 / 안보, 보안이 얼마나 취약했으면 ㅎㄷㄷㄷ
3. 그 다음 정권을 박정이 부하가 계엄으로 탈취함 ㅋㅋ
4. 공산당 졸라 싫어하면서 북한에서 넘어온 자를 국회의원 만들어버림 .. 와이??
5. 이쯤되면 북한하고 내통한건 오히려 그들 아니야?? 이런 이유로 계엄 쳐 할려고??
7. 이걸 본받은 윤돼지가 계엄 따라함 ㅋㅋ ( 멍청해서 계엄도 실패함 )
8. 사법부 수장이 윤돼지 배신하고 무기징역. 30년 선고함/ 한동훈도 배신함.
9. 결론 지 부하들한테 배신당하고 탄핵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