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산 다솔사
봉명산 다솔사
차밭과 독립운동의 천년 서사
봉명산 자락을 타고 오르는 길, 신록이 짙어지는 5월이면 녹차 향이 먼저 산사의 존재를 알린다. 적멸보궁 뒤편 야산에 펼쳐진 약 1만여 평의 차밭은 다솔사가 단순한 기도처가 아님을 조용히 증언한다.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이곳에서는 향기가 곧 역사가 된다.
서기 503년 창건 전승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의 소실, 조선 후기의 중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거점이라는 굴곡 어린 서사를 이 사찰 하나가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해 한용운의 수도처이자 소설가 김동리가 대표작 『등신불』을 집필한 장소이기도 하다. 단 하나의 유적지에 이토록 이질적인 시대가 공존하는 경우는 드물다.
1,500년 전통이 살아 숨쉬는 다솔사의 창건 내력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곤명면)에 자리한 다솔사는 서기 503년, 신라 지증왕 3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승된다.
처음에는 영악사(靈嶽寺)라 불렸으며,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영봉사(靈鳳寺)로 개칭했다.
이후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증축하면서 지금의 이름 '다솔(多率)'을 갖게 됐는데, 이는 방장산의 형국이 '많은 군사를 거느린 대장군'과 닮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말 나옹선사가 중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 대양루의 내력
사찰 경내에서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건물은 대양루(大陽樓)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1년 소실됐다가 1758년 영조 34년에 중건된 2층 목조건물로, 건평이 130평에 달하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돼 있다.
하층은 창고로, 상층은 승려 교육과 신도 집회 공간으로 기능했다. 해방 전에는 민족교육 도장으로, 해방 후에는 효당 최범술 주도의 청년교육장으로 쓰였으며, 6·25 당시에는 서울에서 피란 온 동흥중학교가 4년간 교실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 건물이 품은 근현대사의 밀도가 묵직하다.
석불좌상 16구와 108개의 사리가 전하는 신심
극락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는 전승을 지닌 건물로, 임진왜란 소실 후 1680년 숙종 6년에 재건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보안암 석굴(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은 고려 말 창건 전승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 1.3m 내외의 석불좌상 16구가 줄지어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한편, 1978년 2월 8일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도중 후불 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되면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본뜬 높이 23m, 약 30평 규모의 적멸보궁 사리탑이 건립됐다.
연중무휴·무료 개방, 방문 전 확인 사항
다솔사는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주차 공간과 화장실이 갖춰져 있어 자가용 방문이 편리하며, 공식 홈페이지(dasolsa.kr)에서 사찰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문의는 055-853-0283으로 하면 된다.
경내는 문화재 보호구역인 만큼 정숙 관람이 요구되며, 일부 전각과 석굴은 내부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차밭 탐방을 원한다면 적멸보궁 방향으로 이동하면 된다.
다솔사의 가치는 어느 한 시대에 귀속되지 않는다. 신라의 창건 전승부터 임진왜란의 호국불교, 일제강점기의 항거, 근대 차문화의 정립까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존재해 온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복합적 역사성이야말로 다솔사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게 하는 힘이다.
차밭에 물이 오르고 녹음이 절정에 달하는 지금이 다솔사를 걷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천 년의 향기가 발끝에서부터 스며드는 경험을 이 계절에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Comments
jahee0720
05.30 16:01
dokonako
05.30 23:31

CNXcafe
05.31 00:22
shutel
05.31 09:41
tom99
05.3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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