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영아리오름
물영아리오름
람사르가 지킨 신령스러운 습지
한여름 초록이 짙어진 제주 중산간, 목장 초지를 가로질러 오르는 두 갈래 길 앞에 서면 고민이 시작된다.
삼거리에서 능선으로 곧장 오르는 530m의 가파른 계단길과, 중잣성과 전망대를 거쳐 완만하게 돌아가는 2.16km의 능선길. 짧지만 숨 가쁜 길과 길지만 여유로운 길, 어느 쪽을 택해도 도착하는 곳은 같다.
서귀포 남원읍 한가운데 자리한 이 오름은 국내 오름 중 몇 곳뿐인 람사르습지 등록지이며, 그 이름부터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신령스러운 산이 품은 분화구 습지
물영아리는 예로부터 '수령산' 또는 '수령악'으로도 불려왔다. 이름에 담긴 신령함은 정상의 분화구를 채운 습지에서 비롯된 듯하다.
해발 508m, 비고 128m, 둘레 4,339m 규모의 이 오름은 등록면적 0.31㎢(309,000㎡)에 이르는 산정화구호형 습지를 품고 있으며, 분화구 깊이는 40여m에 달한다. 2100~2800년 전 형성된 이곳은 오랜 시간 퇴적층이 쌓여 최대 10m 깊이에 이르렀다.
지하수나 하천의 유입 없이 오직 빗물로만 채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물의 양은 계절과 강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부 공개 자료에서는 일반인 출입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자연 상태가 잘 유지된 습지로 안내되는데, 그 결과 멸종위기 야생동물 Ⅱ급인 물장군과 맹꽁이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종이 이곳을 서식처로 삼고 있다.
이런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물영아리오름은 2000년 12월 5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먼저 지정됐고, 이어 2006년 10월 18일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며 국제적으로도 보존 가치를 공인받았다.
목장 잣성길 따라 걷는 두 갈래 코스
탐방로는 목장 둘레를 반 바퀴 도는 구간에서 시작해 수망리 중잣성 생태 탐방로로 이어진다. 잣성은 제주 전통 목축 문화가 남긴 유물로, 목초지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다.
오름 안쪽 탐방로는 이 잣성의 흔적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조성돼 걷는 동안 옛 목축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다.
가파른 계단길을 택하면 530m 만에 능선에 닿을 수 있어 짧은 시간에 정상 습지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며, 완만한 능선길을 택하면 2.16km에 걸쳐 중잣성과 전망대를 거치는 만큼 목장 풍경과 오름 사면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특히 가파른 오르막 구간의 계단은 방부목이 아닌 삼나무 원목을 그대로 활용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걷는 내내 나무 본연의 질감이 느껴진다는 점도 눈에 담을 만하다.
방문 전 챙기면 좋은 정보
물영아리오름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수로 552에 위치해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231번과 232번 버스가 오름 들머리에 정차해 접근이 어렵지 않다.
8월 현재 연중무휴 상시 개방으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차장과 화장실도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도 큰 불편 없이 다녀올 수 있다.
다만 강우량에 따라 습지 수위가 달라지는 만큼 방문 전 날씨를 살펴보는 것이 좋으며, 자세한 안내는 제주관광정보센터(064-740-6000)나 물영아리오름(064-728-6200), 또는 관련 홈페이지(https://www.visitjeju.net/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빗물로만 채워지는 분화구 습지가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제 보호지역의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은, 이 작은 오름이 단순한 전망 명소를 넘어 하나의 생태계로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계단길로 짧게 오르든 능선길로 돌아가든, 그 끝에서 만나는 습지는 강우량에 따라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초록이 짙어진 지금, 물이 가득 찼을 분화구를 상상하며 걸어볼 만한 계절이다.
Comments
인터봉지
08.18 08:15
이엔짱
08.18 11:42
제시카
08.18 15:02
인커밍
08.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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