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우당고택
보은 우당고택
숫자보다 큰 베풂의 집
한여름 산자락 아래 고택의 기와가 볕에 익어가는 계절, 충청북도 보은의 골짜기에는 조선 사대부 가옥의 통념을 뒤엎는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 법제상 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집의 한계치는 99칸이었다. 그런데 이 집은 널리 99칸으로 불리면서도 실제로는 134칸에서 143칸에 이르는 규모로 지어졌다.
숫자로 드러난 이 간극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이 집이 품고 있던 특별한 사연을 짐작하게 한다.
만석꾼 부자가 지은 연꽃 명당의 집
이 집의 정체는 보은 우당고택(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이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만석꾼인 선영홍과 선정훈 부자가 집안의 건립을 주도했으며, 공사는 1919년에 시작해 1921년 사이에 모두 완성됐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 구조는 겉보기엔 여느 사대부 가옥과 다르지 않지만, 터부터 남달랐다. 고택이 들어선 자리는 연꽃이 물 위에 뜬 모습을 형상화한 연화부수형 명당에 해당한다.
명당의 기운을 받은 집이 99칸이라는 상징적 숫자로 불리게 된 것도,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지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 집안의 재력과 뜻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관선정, 무료로 학문을 나눈 서숙
선씨 집안은 대대로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뜻의 '위선최락(爲善最樂)'을 가풍으로 삼았다. 이 정신은 집 안에 서숙 관선정을 세우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1926년에 창건된 관선정은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무료 서당이었으며, 학생들에게 숙식과 학비를 전액 제공하며 수백 명의 후학을 길러냈다.
그러나 이 베풂의 공간은 1944년 일제의 탄압으로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집의 규모가 법제를 넘어설 만큼 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교육 공간을 품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궁궐 양식을 품은 세부 구조
우당고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 사대부 가옥과 다른 지점이 눈에 띈다. 방과 대청 사이에 복도 마루가 놓여 있으며, 주로 궁궐이나 사찰에서 쓰이던 둥근 기둥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살림집이 아니라 교육과 접빈의 기능을 함께 수행했던 공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가옥은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지정 당시의 공식 명칭은 '선병국 가옥'이었다.
지금의 우당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공식 기록에는 여전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규모가 큰 만큼 사진에 담기는 구도도 다양해, 안채와 사랑채를 잇는 복도 마루나 둥근 기둥이 늘어선 회랑은 방문객들 사이에서 인생샷을 남기기 좋은 자리로 꼽히기도 한다.
관람 안내와 서원계곡 연계
우당고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입장 마감은 오후 4시 30분이다. 쉬는 날 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입장료와 주차 모두 무료라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관람 문의는 전화(043-543-7177)로 가능하며, 공식 블로그(blog.naver.com/adanggol)에서 추가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낮 동안의 관람으로 끝내기 아쉬운 이들을 위해 한옥스테이도 운영되고 있어, 고택의 고즈넉한 마루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아침저녁의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고택 인근의 서원계곡(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장안로 491-4 일대) 역시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돼 있어, 고택 관람 후 이어 걷기 좋은 코스로 연계할 만하다.
숫자로만 보면 99칸과 143칸 사이의 간극은 과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간극을 채운 것은 위선최락이라는 가풍과 관선정이라는 교육의 실천이었다. 규모의 크기가 아니라 그 규모를 무엇으로 채웠는가가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든다.
무료로 개방된 고택과 계곡이 나란히 있고 하룻밤 머무를 수 있는 한옥스테이까지 갖춘 지금, 더위가 한창인 8월에도 그늘진 고택 마루에 앉아 그 베풂의 흔적을 천천히 짚어볼 만하다.
Comments
인터봉지
08.17 08:53
인커밍
08.17 15:19
머시기
08.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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