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전 구형왕릉
산청 전 구형왕릉
7단 석축의 미스터리
푸른 산자락 아래 돌무더기가 계단처럼 쌓여 올라간 모습을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걸음을 멈추게 된다. 무덤이라기엔 낯설고 불탑이라기엔 거대한 이 구조물은 경상남도 산청에 자리한 전 구형왕릉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은 불탑과 무덤의 성격을 동시에 품은 독보적인 유적이며, 연중무휴 무료로 상시 관람할 수 있는 역사 답사지로도 손색이 없다. 정체성 논란이 오히려 이 유적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무덤인가 불탑인가, 갈리는 학설
전 구형왕릉을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명칭에 붙은 '전(傳)' 자다. '전해 내려온다'는 의미의 이 글자는 정체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나라를 신라에 넘긴 구형왕이 흙 대신 돌로 무덤을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일부 자료에서 안내된다. 반면 불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안동과 의성 지역에 분포한 유사 석조물을 근거로 든다. 형태상 왕릉보다는 불교식 석탑 구조에 가깝다는 논리다.
여기에 구형왕릉 오른쪽 비석 자리가 후대 김유신의 시릉터라는 전승까지 더해지면서, 이 유적은 단순한 무덤 이상의 역사적 층위를 품게 됐다. 어느 학설이 맞든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형태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7.15m 계단식 석축의 구조
유적의 핵심은 정면 7단으로 쌓아 올린 기단식 석단이다. 층높이는 7.15m에 이르며, 계단처럼 층을 이룬 모습이 국내 왕릉 중에서도 이례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뒤쪽 구조인데, 뒤편의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활용해 축조한 탓에 뒷면은 정면과 단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무덤 정상부는 타원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수만 개의 잡석이 촘촘히 쌓여 있어, 오랜 세월 인력으로 돌을 옮기고 쌓았을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축조 방식은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위엄을 갖추려 한 흔적으로 읽힌다.
사적 지정과 이름의 변천
이 유적은 1971년 2월 9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며 공식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지정 당시 명칭은 '전구형왕릉'이었으나, 2011년 7월 28일 고시를 통해 현재의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관리기관은 국유이며 유적이 자리한 총 면적은 45,000㎡에 달해 주변 경관까지 아우르는 규모를 갖췄다. 1793년 조선 정조 17년에는 능 구역에 '가락국양왕릉' 비석이 세워지고 능을 수호하는 재실인 덕양전이 창건됐다.
덕양전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유물이 함께 봉안돼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 음력 3월과 9월 각 16일에 춘·추향제례가 봉행된다. 이러한 제례 전통은 이 유적이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 지금도 살아 있는 추모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무료 개방, 답사 계획은 이렇게
전 구형왕릉은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 92-12에 위치해 있으며,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돼 별도의 관람 시간 제약 없이 방문할 수 있다.
게다가 입장료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부담 없는 답사지로 꼽히며, 인근에는 100대 규모의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방문이 수월한 편이다.
산청군은 이곳을 지역 대표 관광 명소인 '산청 9경' 중 제4경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유적의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경관적 가치까지 함께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정체성 논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유적을 더 오래 곱씹게 만드는 힘이다. 무덤이든 불탑이든, 그 경계에 선 채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무더기 자체가 하나의 답이기 때문이다.
가을 향제가 열리는 음력 9월 16일 전후로 방문한다면 제례의 흔적과 함께 유적의 역사성을 한층 깊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료로, 언제든 열려 있는 이 계단식 석축 앞에서 각자의 해석을 세워보는 것도 답사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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