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
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
셔틀버스 타고 오르는 초록 배추밭
같은 고개 위에 나란히 떨어진 빗물 두 방울이 서로 완전히 다른 바다에서 생을 마친다면 어떨까.
태백의 삼수령은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곳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위치가 손가락 하나만큼만 달라져도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이라는 서로 다른 물길로 갈라진다.
서늘한 바람이 스며드는 길로, 구불구불한 고갯길 끝에는 구름과 맞닿을 듯한 높이에 초록 배추밭이 펼쳐진다.
여름이 무르익을수록 밭은 점점 짙은 초록으로 물들고, 그 위로 바람이 능선을 타고 넘어간다. 물길의 갈림과 채소의 고원이 한 산에 겹쳐진 매봉산은 그래서 여느 여름 여행지와는 다른 결을 지닌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한 물은 낙동강의 근원인 태백 황지로 흘러든다. 이 물줄기와 멀지 않은 삼수령에서는 한강의 시원인 검룡소로 향하는 물, 오십천으로 흐르는 물,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한 고개에서 시작된 빗물이 순간의 방향 차이로 완전히 다른 바다에 닿는 셈이다. 이런 분기 구조는 한반도 수계의 뼈대를 이루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봉산 정상부에 자리한 바람의 언덕(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매봉산길 206)은 해발 1,304m에 위치하며, 태백시 일대의 평균 해발고도가 약 900m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 일대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자리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직전 5년간 태백시의 열대야 발생 일수는 0일을 기록했는데, 고원의 서늘한 공기가 여름밤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화전을 일군 40만 평 고랭지 배추밭
이 서늘한 고도는 뜻밖의 농업 풍경을 만들었다. 1960년대 화전 정리사업을 통해 조성된 매봉산 배추밭은 해발 1,304m, 즉 8부 능선에서 정상 일대에 걸쳐 약 130만㎡(약 40만 평) 규모로 펼쳐져 있다.
험한 산비탈을 일궈 만든 밭이 이토록 넓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개척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곳 고랭지 배추는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 사이에 파종해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에 수확하는 한여름 재배가 적당하다.
서늘한 고원 기후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늦은 시기에 심어도 맛과 저장성을 갖춘 배추로 자란다. 다만 이 풍경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가 계속 더워지는 흐름이 이어지면 고랭지라는 조건 자체가 흔들리면서, 지금처럼 시원한 여름 기온에 의존하는 배추밭이 이 산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확철 통제와 무료 셔틀버스 운행
이처럼 귀한 풍경인 만큼 수확철에는 관리도 까다로워진다. 매봉산 배추 수확철인 7월부터 8월 말경까지는 정상으로 향하는 일반 차량의 진입이 전면 통제되는데, 좁은 산길에 작업 차량과 관광객 차량이 뒤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대신 슬로우트레일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수령휴게소를 거쳐 전망대 구간까지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중형버스 2대가 투입돼 30분 간격으로 오간다. 이 덕분에 통제 기간에도 차 없이 편하게 정상 부근까지 오를 수 있다.
바람의 언덕은 매봉산풍력발전단지와 인접해 국도 제35호선을 통해 다가갈 수 있으며, 태백터미널에서는 시내버스 13번을 타면 20~30분가량 걸린다. 대중교통으로도 고원까지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수계가 갈라지는 경계와 사람이 일군 밭이 한 산에서 만나는 풍경은 흔치 않다. 물길의 방향이 순간에 결정되듯, 이 배추밭의 미래도 기후 변화라는 큰 흐름 앞에서 서서히 방향을 바꾸고 있다.
지금의 초록 능선이 몇십 년 뒤에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름 고원의 바람과 초록빛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통제 기간이 끝나기 전, 셔틀버스로 오갈 수 있는 여름이 지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방문의 이유가 된다.
Comments
인터봉지
08.14 06:46
인커밍
08.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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