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
현재도 효령대군 후손이 사는 고택
강릉 여행길에 오래된 고택 문을 열면 대개 유리 진열장 너머 박제된 풍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손대면 부서질 듯한 목재 기둥과 출입을 막아선 붉은 줄, 안내판 속 설명으로만 남은 옛 생활상.
그렇게 과거의 한순간에 멈춰버린 공간을 상상하며 문턱을 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마당의 마루에는 손때 묻은 나뭇결이 그대로 남아 있고, 어디선가 생활의 온기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지나는 처마 밑에서는 사람 사는 소리가 섞여 들리고, 마루 한편에는 누군가 방금까지 앉아 있었을 법한 흔적도 눈에 띈다. 전시물이 아니라 삶이 먼저 말을 거는 공간, 바로 강릉 선교장이다.
조선 영조 때인 1703년 창건된 이 고택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적 없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선교장
선교장의 시작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얽혀 있다.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고, 그 자리가 예사롭지 않은 길지임을 알아보고 집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짐승의 뒤를 쫓다 명당을 얻었다는 우연이 300년 역사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한편 선교장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집터의 생김새가 마치 배의 앞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실제로 이 일대는 예전에 경포호의 수면과 가까워 배가 드나들던 지형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명 하나에도 땅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우연과 지형이 만나 완성된 터전 위에서, 이내번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살아왔다.
99칸 규모가 품은 살아있는 공간
선교장은 지정구역 8,399㎡, 보호구역 14,970㎡에 이르는 방대한 대지 위에 99칸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이 정도 규모는 여느 반가 고택과 비교해도 손꼽히는 수준이며, 1967년에는 민가 중 최초로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이 단순히 보존을 위한 유적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거주 공간인 외별당 등은 관람 구역과 명확히 분리되어 있어, 후손들의 사생활은 보호되면서도 방문객의 관람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방문객은 옛 건축물을 구경하는 동시에, 지금도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박물관처럼 갇힌 유물이 아니라 300년째 사람이 실제로 숨 쉬는 공간이라는 점이야말로 선교장을 다른 고택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활래정 연못과 목교가 그리는 풍경
선교장 안에서도 특히 발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연못 정원에 자리한 활래정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정자의 모습과 주변 풍경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데, 이곳을 잇는 목교는 2011년에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새롭게 복원된 다리가 놓이면서,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이 완성된 셈이다.
관람 정보와 찾아가는 길
선교장(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운정길 63)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관람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과 경로는 3,000원, 어린이는 2,000원이다.
다만 강릉시민이거나 한옥스테이를 이용하는 방문객이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지역 주민에게는 일상 속 쉼터로, 숙박객에게는 하룻밤 머무는 집으로 기능하고 있다.
방문객을 위한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비는 별도로 받지 않아 접근에 큰 부담이 없다.
강릉 여행에서 흔히 마주치는 유적지가 과거의 한 시점에 멈춰 있다면, 선교장은 여전히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다. 후손이 살아가는 집이라는 사실 하나가 300년의 무게를 단순한 보존의 역사가 아니라 계속되는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여름 끝자락, 경포호를 찾는 길에 잠시 들러 마루에 앉아본다면 유물이 아닌 삶의 온도를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Comments
Roen
08.02 18:13

CNXcafe
08.03 06:18
이엔짱
08.03 09:36
인커밍
08.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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