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송악산둘레길
제주 송악산둘레길
이중분화구와 전쟁유적 품은 해안길
초가을 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제주 서귀포 해안을 걷다 보면 갑자기 땅이 움푹 꺼진 자리와 마주하게 된다. 둘레 약 400m, 깊이 69m에 경사도가 70도에 달하는 가파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완만한 해안 산책로라고만 알려진 이 길이 실은 화산 폭발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이중분화구 지형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맑은 날에는 이 절벽 너머로 가파도와 마라도,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와 걷는 내내 시선을 뗄 수 없다.
이중분화구가 만든 특별한 지형
송악산은 해발 104m, 비고 99m 높이의 이중 화산체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화산 안에 두 개의 분화구가 겹쳐 있는 독특한 지형인데, 제1분화구는 지름 약 500m에 둘레 약 1.7k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반면 제2분화구는 둘레 약 400m로 상대적으로 작지만 깊이가 69m에 경사도 70도로 매우 가팔라서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두 분화구가 나란히 존재하는 덕분에 산책로를 따라 걷는 짧은 동선 안에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화산 지형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송악산 남쪽 해상으로는 형제섬(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44)이 넓게 펼쳐져 있어, 걷는 방향에 따라 매번 색다른 해안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남은 전쟁의 흔적
웅장한 화산 지형 곳곳에는 뜻밖에도 아픈 전쟁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는 2006년 12월 4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면적 9,096㎡ 공간에 총 15기의 동굴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동굴진지는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94-2번지 및 지선 공유수면에 자리한다. 1945년 무렵 일제가 연합군 함대를 향해 소형 선박으로 자살 폭파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 시설인 것으로 안내된다.
한편 외륜 쪽에 위치한 동굴진지 역시 같은 날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면적이 80,365.3㎡에 달하며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86-1번지 외 34필지에 넓게 걸쳐 있다.
이곳에서는 내부 폭 약 1~2m 규모의 입구 22개가 확인되어, 입구 수와 면적 면에서 해안 쪽 시설보다 한층 방대한 규모였음을 보여준다.
무료 개방된 2.8km 걷기 코스
이러한 화산 지형과 역사 유적을 두루 품은 송악산둘레길(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245)은 전체 코스 길이가 2.8km이며, 여유롭게 완주하는 데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용요금과 주차 요금은 2026년 9월 기준 모두 무료이며,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어 있어 방문객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찾을 수 있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화장실과 주차 시설 등 편의 시설이 자연스럽게 잘 갖춰져 있어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인근에 마라도 정기선 승선장이 자리하고 있어, 둘레길 도보 탐방과 섬 여행을 하나로 묶어 연계 코스를 계획하기에도 적합한 조건이다.
가벼운 해안 산책이라 여기고 나섰다가 500m 크기의 거대한 분화구와 69m 깊이의 절벽, 그리고 해안과 외륜을 따라 흩어진 전쟁 유적을 동시에 마주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 길이다.
자연이 쌓아 올린 화산의 시간과 인간이 남긴 전쟁의 흔적이 하나의 해안 동선 안에서 겹쳐 있다는 점에서, 이 둘레길은 단순한 걸음을 넘어 지질과 역사를 깊이 있게 읽어내는 여정을 선사한다.
서늘한 바람이 찾아오는 시기, 잠시 시간을 내어 걷다 보면 잊지 못할 제주 해안의 원풍경을 가슴 깊이 담아갈 수 있다.
Comments
이엔짱
09.08 14:27
skeptic9
09.08 16:06
JinB
09.08 23:42
잉여
09.09 08:44
인커밍
09.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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