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탑사
보탑사
황룡사 9층 목탑을 계승한 충북 진천의 목조 건축 성지
늦봄 햇살이 보련산 자락을 비스듬히 가로지를 무렵, 울창한 송림 사이로 웅장한 목조 탑 하나가 시야를 압도한다. 철이나 콘크리트 하나 없이 목재만으로 쌓아올린 세 층의 지붕이 차곡차곡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위로 상륜부가 구름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신라 멸망 이후 사라진 대형 목탑 양식을 현대에 되살린 이 건물은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삼아 지어진 국내 유일의 보행 가능 목탑이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골라 베어다 쓰고, 못은 단 한 개도 박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를 맞물리는 전통 짜임만으로 42.71m 높이를 올린 것으로, 1,300년 전 신라 목탑 건축의 원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오래된 절터 위에서 다시 피어난 이 공간은 건축 유산과 신앙, 역사가 하나로 녹아든 장소다. 입장료 없이 24시간 열려 있어 계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보련산 자락의 천년 절터, 보탑사의 역사와 입지
보탑사(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는 보련산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이 터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역사 깊은 땅으로, 법화경 견보탑품에 등장하는 다보여래의 칠보탑 출현 설화에서 사찰 이름을 가져왔다.
1992년 5월, 비구니 지광·묘순·능현 세 스님이 발원하여 착공에 들어갔으며, 대목수이자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신영훈 선생이 시공을 감독하였다. 1996년 8월 3층 목탑이 완공되었고, 이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이 차례로 들어서며 2003년 전체 가람이 완성되었다.
사찰 인근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이자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상계리 계양마을과도 가까워, 역사적 의미가 더욱 두텁다.
못 한 개 없이 세운 42.71m, 전통 목구조의 정수
이 목탑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은 재료와 공법에 있다. 강원도 깊은 산에서 엄선한 소나무만을 자재로 삼았으며, 공사 전 과정에서 못은 단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았다.
부재와 부재를 맞물리고 끼워 넣는 전통 짜임 방식으로만 29개의 기둥을 세우고 세 층의 지붕을 얹어, 아파트 14~15층 높이에 해당하는 42.71m를 완성한 것이다.
현대 건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신라 이후 1,300년 가까이 명맥이 끊겼던 대형 목탑 건축 기술을 온전히 재현해냈다.
이 공법을 지휘한 이가 신영훈 대목수로, 전통 목구조 기술을 평생 연구하고 실천해온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다. 못 없이 수십 미터를 올린 이 목탑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건축 문화재인 셈이다.
경내 보물, 진천 연곡리 석비와 고요한 여백
목탑의 웅장함 속에서 또 하나의 유산이 조용히 시선을 끈다. 경내에 보존된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제404호, 1964년 9월 지정)는 높이 212.5cm, 폭 111.8cm, 두께 22.2cm에 이르는 커다란 돌비석이면서도, 비문이 단 한 자도 새겨지지 않은 백비(白碑)다.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석비는 왜 글자 하나 없이 세워졌는지, 오늘날까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석비 주변에는 석불좌상과 삼층석탑도 함께 남아 있어, 이 터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신앙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화려한 목탑 건축 너머, 침묵으로 천 년을 버텨온 석비 앞에 잠시 발길을 멈추면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진다.
층별로 다른 법당, 탑돌이까지 가능한 내부 체험
목탑 내부는 각 층마다 고유한 법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방문객이 직접 내부를 오르며 체험할 수 있는 구조다. 1층 대웅전(금당)에는 심주를 중심으로 석가여래·비로자나불·아미타불·약사여래의 사방불이 봉안되어 있다.
2층 법보전에는 윤장대와 팔만대장경 번역본이 자리하며, 3층 미륵전에 오르면 금동 보개를 갖춘 미륵삼존불을 친견할 수 있다. 난간 밖으로는 보련산의 연꽃 형상 능선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2·3층 외부 난간에서 탑돌이도 가능하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연중무휴·24시간 개방된다. 사찰 입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주차 공간이 있고, 문의는 043-533-0206으로 하면 된다.
내부 계단이 가파른 편이므로 편한 신발을 권하며, 인근 백곡저수지·연곡계곡·만뢰산 등과 연계하면 반나절 이상의 여정으로 이어지기 좋다.
못 한 개 쓰지 않은 소나무 기둥들이 1,3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다시 세운 이 목탑은, 건축 기술과 신앙이 하나로 만나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글자 없는 천 년의 석비와 층마다 다른 법당이 어우러진 이 자리는, 화려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신록이 짙어가는 지금, 혹은 단풍이 물드는 가을 어느 날, 보련산 자락에서 전통 목구조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껴보길 권한다.
Comments
shutel
06.01 07:41
머시기
06.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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