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충곡서원
충남 논산 충곡서원
여름 배롱나무 명소로 다시 피어나다
봄꽃은 화려하게 폈다가도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지고 마는데, 여름철 배롱나무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간표를 산다.
7월 중순 무렵 꽃망울을 맺기 시작해 8월에야 비로소 만개하고, 9월 초까지도 붉은빛을 이어가는 이 나무는 오히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가장 왕성하게 피어난다. 다른 봄꽃들이 자취를 감춘 계절에 홀로 절정을 맞는 셈이다.
충남 논산의 충곡서원은 바로 이 배롱나무가 오랜 세월을 품은 서원 터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 대신 매미 울음이 가득한 여름, 이곳은 역사 유적과 계절 명소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충곡서원
충곡서원(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269번길 60-7)은 1688년, 숙종 14년 지방 유림의 공의를 모아 창건됐다.
백제의 계백 장군과 더불어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위패를 봉안한 데서 시작됐다.
당대 사람들의 뜻이 모여 세워진 만큼 서원의 창건 자체가 절의와 충절을 되새기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서원 역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피해 가지 못해 1868년, 고종 5년에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1933년에 이르러서야 지방 유림이 다시 공의를 모으고 관계 당국의 협조를 얻어 복원 작업을 마쳤다.
이때 이현동, 박증, 김정망, 김익겸, 김홍익, 이민진, 김만중, 박종, 조병시, 김자빈, 이학순 등 11명의 위패가 추가로 배향되면서 제향의 규모가 한층 넓어졌다.
원래 터 위에 새로 세웠다는 의미를 담아 '서원' 대신 '서원지(書院址)'라는 명칭이 붙었고, 1976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며 역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았다.
동재와 서재를 물들이는 붉은 길
역사의 무게와 달리, 여름철 충곡서원지의 풍경은 한결 가볍고 화사하다. 입구 쪽 동재와 서재 양옆을 비롯해 단지 곳곳에 심어진 배롱나무가 여름 내내 진분홍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기와지붕과 배롱나무의 원색이 대비를 이루는 구도는 다른 계절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특히 내삼문 앞 배롱나무 동선은 유적의 무게감과 계절의 생기가 겹쳐지는 지점으로, 짧게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서원의 두 얼굴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논산 지역에는 충곡서원지 외에도 명재고택, 종학당, 돈암서원 등 배롱나무로 이름난 곳이 여럿 있어, 여름 한 철 이들을 잇는 코스로 묶어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무료 개방에 상시 관람까지
방문을 계획한다면 접근성 면에서도 부담이 적다. 입장료와 주차료가 모두 무료로 운영되고 있으며, 별도의 휴무일이나 관람 제한 시간 없이 상시 개방된다는 점도 반갑다.
유명 관광지처럼 예약이나 대기가 필요하지 않은 만큼, 논산 인근을 지나는 길에 즉흥적으로 들르기에도 부담이 없는 셈이다.
한 공간 안에 철폐와 복원이라는 역사의 굴곡, 그리고 매년 되풀이되는 배롱나무의 개화가 겹쳐 있다는 사실은 이 서원지를 단순한 유적 이상으로 만든다.
오래된 것과 매년 새로 피는 것이 한자리에서 공존한다는 점이야말로 이곳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다. 8월 초에서 9월 초 사이, 붉은 꽃이 절정에 이르는 지금이 방문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다.
무료로 상시 개방되는 만큼 여유 있게 들러 동재와 서재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유생들이 거닐었을 길 위에서 여름 한 철의 색을 눈에 담아보길 권한다.
Comments
이엔짱
08.07 11:17
인커밍
08.07 16:49
머시기
08.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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